최근이 아닌, 사실 오래됐고 지난한 주제다. 국민의힘 야당이다. 다들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지만 모르시는 얘기. 아예 관심조차 없다. 대선 득표율의 절반 수준인 20% 초반까지 떨어졌다는 여론조사가 잇따르고 게다가 전통적 지지 기반이던 대구·경북조차 오차 범위 내에서 민주당과 경합하고 있다는 얘기는 충격적이라지만 그리 가슴에 와 닿을 분위기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청년은 물론 노년층에서조차 국민의힘 보다 민주당을 더 지지한다는 응답이 당분간 나올 가능성이 짙다. 당장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정권 초라 해도 올라가고 있고, 예전과 달라진 이 대통령의 노련함마저 보태 모든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과거의 진보와 이별마저 이미 선언한 이 대통령은 어쩌면 작심한 듯 ‘중도보수’까지 아우르고 있다. 이쯤 되면 단순한 선거 패배의 후유증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렵다. 다시말해 지금의 국민의힘 위기는 정당으로서의 존재 이유마저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국민의힘이 처한 현실은 참담하다 못해 못 봐줄 정도다. 국정 운영에 참여하지 못하는 제1야당으로 존재감은 희미하고, 총리 후보자 임명 강행 등 여권의 독주에 대한 비판도 그 어떤 단식투쟁도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지자들이 왜 이 당을 지지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유가 크다. 과거 보수정당의 상징이었던 책임감, 안정감, 정책 능력은 잊은 지 오래다. 심지어 내란 특별검사팀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에 이어 소환 조사를 이어가고 한덕수 전 총리가 수사관이 낀 팔짱에 민망한 모습에도 국민의힘은 모든 언급을 피하며 침묵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정당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회복하는 일이다.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 해법이다. 그런데 지금의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더 나쁘다’는 상대적 비교에 기대고 있는 정도다. 하지만 이 정도로 유권자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렵다. 오히려 혹시 터질 정권의 실수에만 기대어 반사이익을 노리는 자세만이 보인다면 너무 한 비판일 수 있다.

진짜 보수의 가치를 꺼내야 산다. 안보와 성장, 자유와 책임을 축으로 한 보수의 철학이다. 이를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고, 이를 토대로 경제·노동·외교 등 분야별 정책 대안을 선명히 제시해야 한다. 단기적 여론을 좇기보다 장기적인 국가 비전을 제시할 때 국민은 다시 관심을 갖게 된다. 대선 패배 이후 국민의힘에서 제대로 된 책임을 진 사람이 없었다. 권력을 쥔 사람들은 모두 제자리다. 그러다보니 공개적으로 반성을 표한 사람도 드물다. 그 흔한 ‘쇄신’이란 말도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 바뀐 것이 없다. 알다시피 국민의 기대를 회복하려면 실질적인 인적 쇄신이 첫째다. 선거 패배에 책임이 있는 인사들이 당장 물러나고, 청년과 전문가, 지역과 계층을 고루 아우르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특히 외연 확장을 위한 과감한 인재 등용이 있어야 한다.

조직 개편도 중요한 과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진정성이다. 변화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어떤 기구를 만들어도 그저 보여주기 식에 그치고 만다. 짐작하다시피 국민의힘은 여전히 지역 기반 정당의 틀에서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한 여론조사에서 수도권은 물론이고 부산·경남에서도 민주당에 뒤지는 결과가 나온 것은 상징적이다. 이미 이 대통령과 민주당은 내년의 지방선거와 어쩌면 총선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물들어올 때 노 젓는 식이다. 여야 공히 수도권과 중도층의 마음을 얻어야 권력을 쥔다는 것을 이번에도 알았다. 기존 국민의힘이 해 오던 지역 안배식 공천, 당내 계파 논리에 따른 인사 운영은 과감히 털어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현장에서 유권자들과 호흡하는 인물을 발굴해 키워야 한다. 과거 서울시장 보궐선거나 이준석 대표 선출처럼 ‘변화’를 체감하게 하는 상징적 행보가 절실하다. 문제는 정당 안에서의 ‘내부 총질’이다. 쇄신 없이 변화는 없다면서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면서 눈치와 뒷담화다.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오가고 때론 격렬하게 충돌하면서도 함께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문화가 건강한 정당의 토대지만 지금 국민의힘은 그 문화가 실종됐다. 적당한 수술마저도 거부하고 있을 정도다. 아픈 몸으로도 자연치유력만을 믿고 있는 고집만이 남았다. 이런 구조로는 청년도, 중도도 당에 남기 어렵다. 국민은 이제 단순히 이념이 아니라, 그 이념을 어떻게 유연하게 풀어내고 실현하느냐를 본다. 지금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반사이익을 기다리는 태도가 아니라, 능동적인 혁신이다. 2019년 ‘조국 사태’ 때도 당시 황교안 대표의 자유한국당은 오히려 참패했다. 정권이 흔들린다고 해서 야당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법은 없다. 야당이 대안을 제시할 때, 실망한 민심은 돌아오는 법이다. 내년 지방선거는 단순한 선거가 아니다. 국민의힘이 다시 설 수 있느냐, 아니면 점차 정치권에서 존재감을 잃을 것이냐를 가를 마지막 기회다.

이대로라면 수도권은 물론, 전통 지지층이 떨어져 나간다. 정치의 본령은 국민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국민의힘이 다시 그 마음을 얻기 위해선 지금껏 보여주지 못한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왜 이 당이 필요한지 왜 지지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의 위기는 곧 신뢰의 위기이고, 신뢰를 다시 얻는 길은 변화와 혁신뿐이다. 지금 왜 이 자리에 있는지 국민의힘은 다시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물음의 답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할 때다. 앞으로 국민의힘 선택은 그리 많아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해도 그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은 울화통이 치미는 정도다. 견제를 하려면 서서히 힘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정당의 목적을 이루려면 자신부터 변하는 개혁(改革)뿐이다.

문기석 주필

■ 당신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즉시제보 : joongboo.com/jebo
▷카카오톡 : 'jbjebo'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사회부) : 031-230-2330
*네이버, 카카오, 유튜브에서도 중부일보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