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4월생으로 올해 89세인 이종찬 광복회 회장은 1945년 8월 광복 당시 9살 꼬마였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 중국 상해에서 태어난 그는 꼬마였을 때부터 ‘망국노’라는 설움을 뼛속 깊이 새기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눈에 담았다. 이로부터 80년이 지난 2025년 8월, 그가 기억하는 독립운동은 선조들의 ‘피로 쓴 역사’다.
최근 수원을 찾아 특별 강연을 펼친 이 회장은 “기록에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피로 쓴 역사가 바로 우리의 독립운동사이고,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피로 쓴 역사를 요 근래 가벼이 여기는 것 같다. 안중근 의사의 죽음이, 윤봉길 의사의 폭탄이, 유관순 열사의 부르짖음이 공짜였느냐”고 짚었다.
이 회장은 최근 김민석 국무총리와 ‘광복 8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의 공동 위원장을 맡게 됐다. 이와 관련해 8월 15일 오후 5시 서울 탑골공원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나아가는 ‘광복 대행진’ 행사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선열들의 독립 정신을 일깨울 뿐 아니라 후손과 남녀노소 모든 계층의 시민이 어우러져 민주주의의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한 것을 자축하고, 100년의 미래를 향해 전진하며 역사 정의를 세우겠다”는 의지다.
그는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애국정신으로 이어온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이를 위해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후배 세대에게 당부했다. 특히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부터 최근의 대통령 선거까지 사상 초유의 혼란 속에서도 헌법이 작동했기에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다는 점도 강조한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오늘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교훈은 무엇일까. 11일 이 회장과의 대담을 통해 되짚어 본다.
-군인이자 정치인 출신으로서, 비상계엄부터 조기 대통령 선거까지 일련의 과정을 어떻게 봤나.
“비상계엄은 헌법에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상황일 때 선포할 수 있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명시돼 있다. 전쟁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전쟁 상황으로 간주하고, 이를 여야 간의 정쟁 속에서 행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럼에도 민주 정부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대한 확실한 신념을 가진 성숙한 국민이 있었기에 헌법 절차를 하나씩 밟으며 흔들림 없이 (과정을)진행해 왔다. 헌법재판소에서 (윤 전 대통령 탄핵이)기각될 것이라는 우려도 많았지만, 8:0 만장일치로 계엄이 잘못됐다고 결정 났다. 성숙한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혼란 이후 한국 사회의 정체성을 바로 잡고 화합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것은 헌법을 지키자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4·19민주혁명의 정신을 기반으로 몇 가지의 분명한 원칙을 갖고 있다. 나라의 독립부터 민주화, 산업화까지 일관되게 아우르는 절차다. 다만, 정치 체제와 권력 구조에 있어 승자 독식주의적인 부분은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광복 이전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나.
“중국인 틈에서 살며 걸핏하면 욕을 들었다. 친구와 싸우더라도 (친구)어머니가 ‘왜 망국노가 여기 와서 애들을 괴롭히냐’고 했는데, 그 말이 어떤 쌍욕(상욕)보다 지독하게 가슴을 때렸다. 나라가 없다는 게 얼마나 슬픈지, 얼마나 괴로운지 현재 나라가 있는 상황에서 사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일종의 열등감이 있었다. 오늘날 한국은 여러 분야에서 최고 수준에 올랐고 국위도 향상됐다.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위대한 나라가 됐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해 후배 세대에게 당부할 점은.
“광복이 도둑처럼 왔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상당히 잘못된 인식이다. 광복은 독립운동의 결과로 얻은 결실이다.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운 우리 선열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광복 80주년에 제대로 된 역사를 우리 국민이 알아야 한다. 역사를 왜곡하는 뉴라이트 세력을 현실 무대에서 내쫓는 일이 나라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광복 80주년에 우리 국민이 해야 할 일이다.”
-경기도가 지난해부터 도립 ‘독립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이 있다면.
“경기도에 독립기념관을 짓는다고 했을 때 깜짝 놀라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중요한 건 젊은 세대가 독립기념관을 스스로 찾아오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독립운동사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 아닌, 관객이 주인이 되는 기념관이 돼야 한다. 본인 스스로 기준을 세워 해석하고, 그 해석을 결과와 비교해 보며 잘못된 부분을 인식하거나 옳은 부분에 대한 만족을 느끼도록 구성하는 식이다. 이건 새로운 시도다. 단순히 사진이나 유품을 갖다 놓는 종전의 죽은 기념관이 돼선 안 된다. 살아있는 기념관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설계 단계에서부터 전문적으로 진행하고, 구현에 있어서도 AI(인공지능)와 같이 선진화된 기법을 활용해야 한다.”
-2023년 6월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했다. 보훈 위상에 걸맞은 예우가 이뤄지고 있는지.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나 역시 보훈부를 만든 주역 중 하나인데, 체감할 만한 큰 변화는 없어 안타깝게 생각한다. 보훈은 한 나라의 방향을 결정하는 최고의 덕목이다. 보훈의 목적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받들고, 기억하게 만들고, 업적을 소개하고, 역사를 이어가게끔 하는 것이다. 국가의 모든 보훈자가 혜택을 받도록 위상이 더 강화돼야 한다. 제복 근무자들 또한 높이 평가받는, 존경받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군인, 경찰관, 소방관 등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국민을 보호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우리가 높이 끌어올리지 않으면 우리의 임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을 비롯한 외교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나.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큰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른바 포위돼 있는 나라인데, 대통령이 어느 쪽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균형 외교를 할 수밖에 없다. 가치 외교보다는 타 이웃과 친하게 지내기 위한 실리 외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임기 중 이루고픈 목표와, 광복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달라.
“광복회는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여야를 떠나 어디에도 치우치지 말고, 하나의 원로단체로서 사표(師表·학식과 덕행이 높아 남의 모범이 될 만한 인물)가 되길 희망한다. 나라에 어려움이나 혼란이 생겼을 때 광복회가 건전한 방향을 제시하면서,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단체로 나아가는 것이 소원이다. 어느 쪽에 편중되지 말고, 갈등이 있을 때 중화할 수 있는 광복회가 되길 바란다.”
강현수기자
사진=임채운기자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선생 손자로, 1936년 4월 중국 상해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16기)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1981년 서울 종로구에서 제11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제14대까지 4선을 지냈다. 국가정보원장과 육군사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우당이회영선생교육문화재단 이사장과 제23대 광복회장을 맡고 있다. 광복회장 임기는 2023년 6월 1일부터 2027년 5월 31일까지 4년간이다. 보국훈장 삼일장과 홍조근정훈장,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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