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를 무대로 악명을 떨친 마피아 보스, 알 카포네(Alphose Gabriel Capone, 1899~1947)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청소년 갱단과 어울려 이를 지도하는 여선생한테 매를 맞다가 참지 못하고 여선생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한 것이 문제가 되어 결국 학교를 그만 두고 그것으로 학교 교육은 끝을 맺었습니다.
그는 시카고로 와서 밀주 매매, 매춘 등으로 1927년 한해 총 수입이 1억 달러로 세계 최고의 시민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밤의 대통령이란 별명이 붙었으며 심지어 아인슈타인과 헨리포드와 함께 시카고의 젊은이들로부터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성장(?)하는데는 ‘이지 에디(Easy Eddie)’란 변호사의 공로가 컸습니다.
이지 에디의 본명은 에드워드 조셉 오헤어(Edward Joseph O‘Hare, 1893~1939)입니다. 그는 해박한 법률 지식으로 알카포네가 각종 범죄행위로 감옥에 가는 것도 막아주었고 알카포네를 위한 헌신적 노력에 알카포네는 조셉 오헤어에게 많은 돈을 주고, 사업배당금, 호화저택 등으로 보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셉 오헤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돈의 노예가 되어 더러운 삶을 사는 것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는 에드워드 헨리 오헤어(Edward Henry O‘hare, 1914~1943)라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들 헨리 오헤어에게 훌륭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조셉 오헤어는 알카포네의 모든 범죄사실을 수사당국에 고발하고 자신의 죄과(罪過)도 자백했습니다.
아들에게 정의로운 삶을 살도록 하겠다는 아버지의 결단이었습니다.
그로인해 조셉 오헤어는 시카고 외곽 외딴 거리에서 운전 중 온몸에 총알을 맞은 채 삶을 마쳤습니다.
조셉 오헤어는 죽음으로 아들 헨리 오헤어에게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정의감을 선물로 준 셈입니다.
조셉 오헤어가 죽은 후 그의 옷 주머니에 묵주와 십자가가 있었고 ‘인생의 시계의 태엽은 한번 밖에 감을 수 없다. 아무에게도 이 시계를 멈추라고 할 능력은 없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소유한 유일한 시간이다. 살고 사랑하고 힘써 일하라. 인생은 어느 덧 끝나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마음은 갈 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라는 글이었다고 합니다.
아들 헨리 오헤어는 체격이 커서 부치(Butch, 사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의 장부로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1940년 5월 USS사라토가 항공모함에 배치되었고 F4F 와일드캣 항공기를 배정받았습니다. 1941년 9월 간호사 리타 우스터(Rita Wooster, 1921~2000)와 결혼 후 신혼도 잠깐 태평양 전쟁 발발로 헨리 오헤어 중위는 렉싱턴 항공모함으로 배속되었습니다.
1942년 2월 20일 임무를 수행하고 오던 중 함재기가 있는 렉싱턴 항공모함을 공격하려던 일본 전투기들을 발견하고 연료가 부족한 가운데도 일본항공기를 6대나 격추시켜 2천800명의 생명과 함재기와 항공모함을 구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F.D.루즈벨트 대통령은 2계급 특진을 시켜 소령으로 승진했고, 의회명예훈장을 받은 최초의 해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43년 11월 26일 야간 초계비행을 하던 헨리 오헤어소령의 전투기가 미국전투기와 일본전투기 사이에 있다가 사격을 받아 길버트 해역에서 비행기와 함께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그후 1945년 6월 22일 새로 건조된 구축함에 ‘USS오헤어’라고 함명이 붙여졌고 그가 태어난 시카고의 오차드 디포드 공항(Orchard Depot Airport)는 오헤어 국제공항(O‘Hare International Airport)로 1949년 9월 19일 명명되었습니다.
아버지 조셉 오헤어의 양심 선언 후 살인청부업자에 의해 유명을 달리하며 남긴 소중한 가치 ‘정의’가 아들 헨리 오헤어가 애국심으로 승화시켜 영웅이 되었고 시카고 오헤어공항을 이용하는 모든 이들과 후세들이 자랑스런 영웅의 정신을 되새기며 옷깃을 여미게 하는 역사의 현장을 봅니다.
유화웅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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