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얼굴을 지우는 언어
우리는 존중을 잃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평등과 인권, 다양성을 외치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그 모든 가치가 너무 쉽게 짓밟힌다. 타인의 말과 생각, 삶의 방식에 대해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틀림으로 간주하고, 편을 가르며 혐오를 선동한다. 가정, 정치, 종교, 온라인에서 나타나는 존중의 부재는 일상 전반에 침투한 사회적 병증이다.
지난 겨울, 국가 변란과 법원 공격의 사회적 충돌 상황에서, 무력의 위협과 말의 폭력은 정점을 찍었다. ‘제거’, ‘박멸’, ‘소거’와 같은 파괴의 언어가 거리와 사이버 공간을 장악했고, 익명성은 인간의 존재감을 지워버렸다. 언어는 인간의 사유를 반영하는 도구다. 그 언어가 타인을 해체하고 대상화하는 순간, 사회는 전장(戰場)이 된다. 정치적 반대자, 사회적 약자, 생각이 다른 사람은, 더 이상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목록에 오르게 된다.
정치 영역에서, 상대 당을 향해 악담을 퍼붓는 모습을 보면, 얼마 전 자당(自黨)이 저지른 악행을 복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언어폭력은 공동체 정신을 파괴하고, 구성원을 적으로 간주하게 한다. 인칭대명사가 사라지면, 인간이 ‘이것’, ‘저것’과 같은 익명의 집단 이미지로 치환된다. 그런 지칭은 한 사람의 삶, 경험, 고통, 사랑, 고유성을 모조리 지워버린다. 타인을 온전하게 부르지 않을 때, 존중은 사라지고 사회는 도덕적 망각 상태에 빠진다. 말의 폭력은 가시적인 것보다 더 오래, 더 깊게 사람을 파괴한다.
종교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신념의 자유를 보장받는 사회에서 오히려 종교의 이름으로 타인을 정죄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특정 종교 집단이 타 집단을 향해 ‘이단’이나 ‘불신자’로 낙인찍어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현실은, 종교의 본질을 무색하게 한다. 객관화할 수 없는 믿음을 과학적 진리인 양 단정함으로써 초래하는 배타적 재앙이다. 절대성과 영원성을 다루는 종교의 속성상, 타자에 대한 더 절제된 언어와 깊은 윤리가 요구된다.
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더욱 심각하다. 아직도 그들을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 속에 가두려 한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사회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권력의 작동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을 정의한다. 즉 ‘정상성의 정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방증이다. 지향의 다름으로 차별당하는 성 소수자들은, 타인의 시선에 대상화가 되어,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한다. 이는 권력이 몸의 정체성까지 통제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들은 ‘왜 자신이 그런 방식으로 살아야만 하는지’를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이 불균형한 조건 속에서 존중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세대 사이에서도 존중의 결핍은 뚜렷하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예의 없는 세대’라 단정하며, 그들의 문화나 새로운 가치관을 경시한다. 청년 세대는 윗세대를 ‘꼰대’라 부르며, 그 경험과 지혜를 무시한다. 상호 존중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세대 간 불신과 단절이다. 서로 다른 시대적 조건과 경험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공통의 언어는 사라지고, 서로를 낯선 타인으로 간주하게 된다. 결국 ‘세대 간 대화의 윤리’를 회복하는 데서 존중이 시작될 수 있다.
타인의 목소리에 응답하기
교육 영역에서, ‘존중의 가치’를 주요 과제로 다루어야 한다. 타인의 감정 읽기, 배경 이해하기로 의견의 차이를 수용하는 능력을 배양하고, 공론장 소통의 윤리를 회복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소양이다. 인터넷 공간 실명화 제도로, 익명성 뒤에 숨은 언어폭력을 규제해야 한다. 사회 여론을 빙자하여 수익을 올리는 뉴미디어 매체를 찾아내, 혐오의 클릭 장사에 대한 강력한 ‘징벌적 배상제’를 실시해야 한다.
타인은, 내 삶에서 비교의 기준도, 통제가 가능한 대상도 아니다. 개개인은 나와 함께 이 불완전한 세계를 견디며 살아가는 독립된 주체이며, 고유한 서사를 지닌 존재다. 우리는 너무 쉽게 상대를 해석하고 평가한다. 존중은 침묵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타인의 선택에 든 진실성과 무게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절실하다. 존중이란, 말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고, 침묵할 권리를 보호하며,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존중 없는 사회는, 성향이 다른 타인을 적으로 규정하고 제거하려 든다. 이는 자해적 사회로 전락하는 길이다. 무례한 독선을 끝내고, 이제는 모두를 포용해야 한다. 존중이란, 타인의 이름을 ‘대상’이 아닌 ‘존재’로 부르는 일이며, 그 존재를 두고 판단하기를 멈추는 것이다. 존중 없는 사회는, 서로를 소진하는 구조로 전락하고 만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공감, 상호 존중을 통해서만 작동한다. 존중이 사라지면, 민주주의도 인간의 품격도 함께 무너진다.



AI기자 요약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