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성남아트리움 대극장에서 열린 창작 오페라 ‘바람의 노래’ 초연을 마치고 연출진과 출연진이 관객에게 인사를 전하고 있다. 이준도기자
지난 14일 성남아트리움 대극장에서 열린 창작 오페라 ‘바람의 노래’ 초연을 마치고 연출진과 출연진이 관객에게 인사를 전하고 있다. 이준도기자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성남에서 박태현의 동요가 오페라로 다시 태어났다.

성남문화재단은 지난 14일 성남아트리움 대극장에서 창작 오페라 ‘바람의 노래’를 초연했다.

‘바람의 노래’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성남문화재단이 항일 동요 작곡가 박태현의 작품을 기반으로 만든 창작 오페라다.

평양 출신 박태현은 도쿄음악학교(현 도쿄음악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하고 평생을 동요 작곡에 헌신한 인물로, 73세의 나이인 1980년부터 성남에 정착해 87세에 별세해 분당구 야탑동 남서울 공원 묘역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제2의 고향인 성남에서 성남예총 창립에 기여하고, ‘나 성남에 살리라’ 등을 작곡하는 등 지역 문화예술의 기반을 다진 그를 성남문화재단이 조명해 제작한 작품이 ‘바람의 노래’다.

‘동요’와 ‘오페라’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의 만남으로 눈길을 끈 이번 작품에는 화려한 연출진과 출연진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작곡가 김주원이 박태현의 동요 선율에 현대적 음악어법을 결합했으며,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한 극작가 황정은이 대본을 맡았다. 지휘는 50여 편의 오페라 작품을 이끈 김덕기 지휘자가, 연출은 국내외 주요 오페라 무대를 창의적으로 해석해 온 조은비 연출가가 참여했다.

주인공 강바람 역은 소프라노 홍혜란, 달은 테너 최원휘가 맡았다. 또 메조소프라노 백재은과 베이스바리톤 우경식 등 국내 최고 수준의 성악가를 비롯해 성남시립교향악단·합창단·소년소녀합창단 등 성남시립예술단이 총출동했다.

1950년대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인 한국 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산 밑 빈집에 사는 아이 강바람이 자연과 함께 만드는 생명의 이야기를 그린다.

극은 이원화돼 강바람의 시선으로 본 판타지적 세상과 지독할 만큼 고통스러운 현실로 나눠진다.

두 시점이 나눠지는 기준은 강바람이 혼자 있을 때와 강바람 외의 현실 속 인물이 등장할 때다. 주인공이 혼자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의인화돼 강바람의 친구가 된다. 인형인 친구 달을 비롯해 바람, 귀뚜라미, 황새 등은 모두 생명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들로 춥고, 배고픔을 함께 나누고 견디는 존재들이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군인들은 지독한 현실을 상기시키는 역할이다. 불바다로 바뀐 배경과 무대를 채우는 총성과 포격, 총을 들고 바삐 움직이는 군인들은 동요를 부르며 동물들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강바람과 대비돼 강바람의 시점과 현실을 구분한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를 소재로 삼는 많은 작품들과 구분되는 이 작품만의 특징은 단연 ‘동요’다. 조은비 연출가의 설명처럼 이 작품에서 동요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기도이며, 현실을 잊고 잠들게 하는 자장가, 목놓아 부를 수 있는 울부짖음 등으로 강바람이 참혹한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게하는 버팀목이다.

다만 어른처럼 현실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것과는 다르다. 작품은 순수의 매개인 ‘동요’를 통해 폐허와 상흔을 아이처럼 바라볼 수 있음을 강조하며, 이는 전쟁 같은 우리들 삶에서도 자신만의 순수의 매개가 있다면 잠시나마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같은 맥락으로 자신의 기억이 모두 상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주인공이지만 다른 작품처럼 ‘일장춘몽’의 덧없음을 주제로 하지 않는다. 구운몽처럼 꿈에서 깨며 인생무상과 해탈의 의미를 전하는 것이 아닌 동요를 통해 만들었던 아름다운 기억을 앞으로 살아갈 희망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점 역시 우리네 삶에게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아리아로 그대로 쓰이거나 주요 멜로디로 재창작된 박태현의 ‘산바람 강바람’, ‘깊은 밤에’, ‘자장가’, ‘다 같이 노래 부르자’ 등은 서정적인 특유의 멜로디로 극의 정서를 이끈다. 또 스크린과 빛이 투과되는 막을 통해 투명과 불투명한 장면을 연출한 무대도 이원화된 극의 구조를 강조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막을 내린 무대를 뒤로하는 관객들의 입에서는 약속한 듯이 노래가 흘러 나왔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순수의 기억을 통해 희망과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는 ‘바람의 노래’는 15일에도 성남아트리움 대극장에서 이어진다.

이준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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