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서유구(1764∼1845)가 수원지역 지방 장관격인 수원유수(水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서유구(1764∼1845)가 수원지역 지방 장관격인 수원유수(水原留守)를 지내면서 썼던 행정일기인 고문서가 경기도 박물관(관장 이종선)에 의해 우리말로 번역돼 출간됐다.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학술연구 사업을 펼치고 있는 도박물관이 박물관학술총서로 발간한 ‘화영일록(華營日錄)’은 조선후기인 1836년인 헌종 2년 1월1일 수원유수로 제수받은 서유구가 이듬해 정유년(丁酉年) 12월12일까지 19일 모자라는 2년 남짓한 기간을 지내며 쓴 행정일기에 설명을 곁들인 완역판이다. 서유구가 살았던 시기는 영조- 헌종 시대로 실학의 시대에서 개화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전통적인 지배체제에 큰 변화가 일던 혼란기였다. 이같은 시기에 관직 생활을 하면서 사회와 경제상을 기록한 서유구의 행정일기는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상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연암 박지원의 깊은 사상적 영향을 받았으며 농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실학자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종저보(種藷譜)’를 비롯한 많은 농업 관련 서적도 편찬했으며 일기를 통해서도 그의 박식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내용중에는 ‘우택장계’(雨澤狀啓)와 ‘농형장계’(農形狀啓)가 자주 그리고 상세히 나오고 있어서, 수원부 그리고 수원부에 이웃한 지역의 전작·답작(田作·畓作) 농업의 경작 실상과 농법(農法)을 소상하게 알 수 있으며 ‘우축 모손(牛畜 耗損)이 당시의 농업경영에 큰 폐해(弊害)가 되고 있다’는 내용에서 농업에 사용되는 소가 무단도축 되고 있어 폐해가 잇따르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부세거납(賦稅拒納)이 반호(班戶)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세금 납부를 거부한 주도적인 계층이 양반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음이 기록 돼 있다. 원본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유출돼 현재 일본 오사카 부립도서관에 보관중이다. 책의 번역은 한학자인 이해형(명지서당 훈장)씨가, 문헌의 해제는 정창렬 한양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화영일록’에 대한 정교수의 해설을 시작으로 본문이 상세히 기록돼 있으며 이어 조선왕조실록 서유구 관련 기사 와 서유구 연보, 달성 서씨 서유구 가계도가 부록으로 실려있다. 양상훈 경기도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 ‘화영일록’은 서유구의 박식하고 다양한 기록을 통해 서민 삶과 생업 수단인 농업에 얼마나 큰 관심이 있었는지와 농업정책에 애쓴 모습을 볼수 있다”며 “행정 관료로의 활동과 역할 뿐만 아니라 당시 실학의 흐름을 읽는 중요한 자료다”라고 밝혔다. ‘화영일록’은 일반인들의 관람 편의를 위해 각 대학도서관과 공립도서관등에 비치된다. 문의 031-288-5363임선미기자/smlim@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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