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나면 어쩌나" 노심초사

"탈북단체가 대북전단 뿌렸는데

왜 우리가 불안해야 하나" 분노

파주 월릉면 주민들 반대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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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경기 연천군 중면 삼곶리에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돼있다.

◇오물풍선·대북전단 난리에도...접경지역 연천 ‘평온’

"연천군 중면 지역은 여태까지 오물 풍선이 떨어진 적이 없는데 오늘 오전 8시쯤 인근 부대에서 전화가 오더니 다수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논밭에서 풍선을 발견하면 손대지 말고 바로 신고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6·25전쟁 제74주년을 맞은 지난 6월 25일 오전 접경지역인 경기 연천군 중면 삼곶리에서 만난 최병남 이장은 덤덤한 표정으로 이 같이 말했다.

북한은 지난 5월 28일부터 한 달째 오물이 담긴 풍선을 남쪽으로 날려 보내고 있다. 한 달 새 7차례 살포해 현재까지 식별된 오물 풍선만 2천400개에 달한다. 통일부가 지난 6월 24일 발표한 오물 풍선 분석 결과를 보면 풍선에는 폐종이나 비닐, 자투리 천 등의 쓰레기가 담겨 있었고 퇴비 등 물질에선 기생충이 검출되기도 했다.

특히 오물 풍선이 떨어지며 차량 유리창이나 건물 지붕이 파손되는 등 여러 피해 사례가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은 날로 증폭되고 있지만, 접경지역 주민들은 긴장에 익숙해진 탓인지 오히려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최 이장은 "남북 간 긴장 관계가 고조될수록 불안감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접경지역 주민들이 도시 사람들보다 느끼는 불안감이 덜한 것 같다"고 말했다.

6월 25일 경기 연천군 중면에 ‘북한군 고사기관총탄 낙탄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6월 25일 경기 연천군 중면에 ‘북한군 고사기관총탄 낙탄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북한 포격지 연천 중면… 오물 풍선에 큰 동요 없어

민통선과 접한 연천 중면 지역은 2014년 10월 탈북자 단체가 살포한 대북 전단을 겨냥한 북한의 고사포 사격으로 총탄이 떨어지는 피해를 입었던 곳이다. 당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주민들에게 긴급대피령이 내려졌고, 우리 군은 대응 사격과 함께 최고 경계 단계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면서 남북이 긴박하게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2015년 8월에는 대북 확성기 방송에 반발한 북한이 확성기가 설치된 중면 지역 야산으로 고사포 1발을, 비무장지대(DMZ) 안 남측 지역으로 직사포 3발을 발사하기도 했다.

최 이장은 "당시 면사무소 마당에 떨어진 총탄을 최초로 발견하고 근처 군부대 사격장에서 오발탄이 떨어졌나보다 생각해 신고했는데, 북한에서 발사한 고사포라고 하더라"며 "그 사건 때문에 여기 주민들은 면사무소 대피소에 가서 3일 정도 자고 왔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북한의 도발로 위급한 상황이 있었던 탓에 남북 관계가 경색된 지금 불안감이 클 법도 한데, 이곳 주민들은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삼곶리에 거주하는 40~50명의 주민은 대부분 영농 출입증을 갖고 민통선 안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최 이장은 "예전 고사포 사건이나 비무장지대 포격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민통선 출입을 통제했다"면서 "지금은 민통선 지역의 출입 통제가 없기 때문에 생계가 위협받거나 어려움에 처할 만한 상황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중면행정복지센터에서 만난 임재붕 중면장도 "보시다시피 중면 주민들은 오물 풍선 등에 연연하지 않고아무런 동요 없이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있다"며 "오히려 접경지역 주민들이 아닌 외부 사람들이 더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6월 25일 경기 연천군 중면 삼곶리 최병남 이장이 민통선 근처의 논밭을 가리키며 마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6월 25일 경기 연천군 중면 삼곶리 최병남 이장이 민통선 근처의 논밭을 가리키며 마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헌재 대북전단금지 위헌 결정

제재방법 수단 찾기 힘든 현실

신고제 도입해도 실효성 의문

◇"대북 전단 살포 자제를"

‘오물 풍선’ 살포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해 이날 인터뷰 내내 의연한 태도를 보이던 최 이장은 탈북민 단체 등의 대북 전단 살포 행위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최 이장은 "북한의 실상을 아는 탈북민 단체 등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알리기 위해 대북 전단이나 쌀, 달러 등을 조금씩 담아 보내는 심정도 일응 이해는 간다"면서도 "지금은 남북의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조금 자제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최 이장은 또 "군 당국이 여차하면 대북 방송을 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가 잘 대응해 무난히 이 고비를 넘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우리 군은 지난 6월 4일 ‘9·19 군사합의’의 효력이 정지된 이후 고정식·이동식 대북 확성기를 모두 설치하고 재가동할 준비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군은 지난 9일 접경지역에서 고정식 확성기 일부로 대북 방송을 틀어 맞대응에 나섰으나, 그 이후로는 확성기를 가동하지 않고 있다.

 

북한발 오물 풍선으로 남북간 긴장관계가 날로 고조되고 있지만 6월 25일 찾은 경기 연천군 전곡읍 시내는 평온한 분위기다.
북한발 오물 풍선으로 남북간 긴장관계가 날로 고조되고 있지만 6월 25일 찾은 경기 연천군 전곡읍 시내는 평온한 분위기다.


◇북한 잇따른 도발에도 접경지역 상인들은 ‘시큰둥’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위축된 지역경제가 더 타격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지만, 이 또한 기우에 불과한 모양새다. 연천군민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전곡읍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오물 풍선 사건 이후 생긴 경제적 타격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전곡터미널 뒤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요즘 손님이 조금 줄긴 했지만 날씨가 더워서 그렇지 오물 풍선과는 전혀 상관 없다"며 "여기 사람들은 북한이 도발하면 그런가보다 하지 그런 일은 신경도 안 쓴다"고 잘라 말했다.

전곡역 인근에서 카페를 하는 B씨도 "북한 도발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이제는 별 감흥이 없다"며 "지금까지는 매출이 줄거나 하는 특이한 변화도 없다"고 했다.


◇연천 소재 전망대 4곳 중 2곳 폐쇄...군 당국은 긴장감 고조

정작 접경지역 주민들은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며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반면 군 당국은 긴장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연천군 비무장지대(DMZ) 안에는 ▶태풍전망대 ▶열쇠전망대 ▶상승전망대 ▶비룡전망대 등 군이 관할하는 4곳의 전망대가 있는데, 6월 25일 기준 태풍전망대와 열쇠전망대만 출입이 가능하고 나머지 2곳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연천군 관계자는 "오물 풍선 여파로 6월 12일 연천군 소재 4개 전망대 출입이 모두 통제됐다가 태풍전망대와 열쇠전망대는 현재 통제가 해제된 상태"라며 "상승·비룡 전망대는 특히 철책과 가깝다 보니 군에서 안전사고에 대비해 관광객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연천 시티투어 버스를 통해 태풍전망대를 둘러볼 수 있는 안보 관광 코스(전철 1호선 연천역~미라클타운∼태풍전망대∼연강갤러리∼연천역)는 현재 정상 운행되고 있다. 연천군 관계자는 "태풍전망대는 다른 전망대와 달리 인근에 카페도 있고 농민들이 농산물도 직접 판매하고 있는 만큼 안보 관광이 중단되면 지역주민들의 생계와 관련된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연천군 삼곶리 인근은 온통 논밭이지만 경작하는 주민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6월 25일 만난 최병남 이장은 대부분 주민들이 요새 날씨가 더워 새벽이나 아침 일찍 일을 하고 낮에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기 연천군 삼곶리 인근은 온통 논밭이지만 경작하는 주민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6월 25일 만난 최병남 이장은 대부분 주민들이 요새 날씨가 더워 새벽이나 아침 일찍 일을 하고 낮에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물 풍선 원인은 대북 전단"...강경 대응 나선 경기도

경기도는 한 달 째 이어지고 있는 북한발 오물 풍선 도발 등의 원인이 대북 전단 살포에 있다고 보고 이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일례로 도는 북한과 맞닿은 도내 일부 시·군을 위험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북 전단 살포자의 출입을 통제하고 관련 물품의 준비나 운반을 막기 위해서다. 위험구역으로 지정되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42조 1항에 따라 민간인, 차량 등 출입 통제가 가능하다.

도는 접경지역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고 있는 탈북민 단체에 대해 항공안전법 위반을 근거로 경찰 수사도 의뢰한 상태다. 도는 대북 전단에 사용되는 대형 풍선은 항공안전법에 따른 초경량비행장치에 해당돼 국토교통부 장관의 비행 승인 없이 사용할 수 없는 장치로 판단하고, 항공안전법상 처벌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도는 6월 11일부터 특별사법경찰관을 통해 고양, 파주, 김포, 포천, 연천 등 5개 시군의 대북 전단 살포 예정지를 대상으로 순찰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반면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며 대북 전단 살포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북한에 대응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입장이 대비되는 가운데 경색된 남북 관계가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관심이 쏠린다.

박홍기·이석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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