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영역에 AI를 도입하는 것은 한국만의 흐름은 아니다. 영국 기술정책 연구소 옥스퍼드 인사이트(Oxford Insights)는 지난해 국가별 ‘정부 AI 준비지수’를 발표했다. 정부의 역량과 기술 인프라 등이 갖춰진 정도를 10가지 기준으로 따져 선정한 것으로 1위는 미국이 차지했다. 이어 싱가포르·영국·핀란드·캐나다·프랑스·한국·독일·일본·네덜란드 순이다.
국가별 정부 AI 준비지수
핀란드 '거버넌스와 윤리' 92.68점
한국 87.78점·미국 89.08점 불과
'인간 중심 AI'에 방점 찍어 주목
이 가운데 정부의 윤리적·전략적 고민에 높은 점수를 받아 4위에 오른 핀란드가 눈에 띈다. 핀란드는 ‘거버넌스와 윤리’ 항목이 92.68점으로 종합 1위 미국보다 높고 데이터 가용성과 대표성·디지털 역량·적응성 등에 관한 항목에서도 미국을 앞섰다. 7위인 한국은 데이터 가용성(95.65)·인프라(79.35)·인적자본(65.6)·디지털 역량(91.57) 등은 핀란드에 비해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87.78점을 받은 거버넌스와 윤리·혁신 역량(59.04)·성숙도(38.46)·데이터 대표성 (80.06)등은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부일보는 AI 행정의 다른 결을 확인하고자 지난 10월 핀란드를 찾았다.
핀란드 대표 AI행정 '오로라'
제2도시 탐페레시 AI전환허브 구축
생애 '사건'에 맞춘 복지 서비스 눈길
쉽게 꼭 필요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
◇AI 통한 ‘상처 주지 않는’ 복지= 핀란드의 대표적인 AI행정 시도는 2017년 시작해 지난해 일단락된 ‘오로라AI 프로젝트(이하 오로라AI)’다. ‘인간 중심 AI’를 전면에 내세운 오로라AI는 향후 지속할 AI 행정 도입에 주목할만한 기술·윤리적 시사점을 남겼다.
오로라AI를 지방행정에 접목한 대표적인 곳은 제2 도시 탐페레(Tampere)다. 수도 헬싱키에서 고속열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인구 25만여 명의 탐페레시는 곳곳에 붉은 벽돌로 지은 옛 공장 건물이 남아 있는 산업도시로 최근에는 IT산업을 주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특히 핀란드 최초로 ‘AI전환허브’를 구축하고 ▶지역 AI생태계 통합 ▶R&D·비즈니스 혁신 ▶스마트시티 테스트베드 플랫폼 역할 등을 총괄하고 있다. 또 오로라AI에 참여해 ▶복지 지원 서비스 개발 ▶공공서비스 디지털화 ▶데이터경제 모델 구축 등도 도모했다.
오로라AI가 강점을 지닌 분야는 복지다. 특징은 우리 행정에서처럼 ‘생애 주기’가 아니라 ‘생애 사건(life event)’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즉 특정 구간으로 대상을 분류하기보다 개별 시민의 다양한 삶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들을 체크함으로써 더 세밀한 지원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탐페레시는 이를 활용해 ‘후올레히티빌레 누오릴레(Huolehtiville nuorille, ‘돌보는 청소년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질병이나 정신적 문제를 가진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접근성·익명성에 중점을 둠으로써 다양한 지원 서비스를 쉽게 요청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시 유소년 복지정책과 소속으로 프로그램을 담당한 라우리 이꼴라(Lauri Ikola)는 "‘돌보는 청소년들’은 개별 서비스를 일일이 알아보거나 복잡한 서류 증빙으로 본인이 수급대상자임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며 "상담·학습·식료품·바우처 등 상황에 맞게 필요한 복지로 연결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급자들이 익명을 유지할 수 있게함으로써 망설임이나 수치심 없이 자기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했다"고 덧붙였다.
오로라AI 사업의 주무 부처였던 핀란드 재무부를 거쳐 탐페레시의 스마트도시화를 담당하고 있는 알렉시 코펜넨(Aleksi Kopponen)은 "오로라AI는 시민들의 프로필을 세분화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며 "예컨대 핀란드어가 아닌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가족은 이에 맞는 서비스를 추천하고 연결했다"고 말했다. 이어 "AI를 통해 정치적 결정권자들도 시민들의 특성을 세세히 파악할 수 있다"며 "이런 모델은 향후 사회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편리함 뒤에 가려진 그늘
행정 절차 간소화는 긍정적 평가
설계 부분만 가능한 알고리즘 정책
개개인의 견해도 실제화 가능해야
◇‘편리함’의 이면도 고민해야 = 그럼에도 오로라AI에 대한 비판은 존재한다. 핀란드인공지능연구센터(FCAI)가 개최한 패널 토론회에서 오로라AI는 행정 절차를 간소화한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관료주의적 성격과 개인의 자율성 부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지난달 17일 헬싱키대학교에서 만난 산뚜 레이세넨(Santtu Raisanen) 소비자사회연구소 연구원은 AI·디지털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학자로, 오로라AI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AI 알고리즘을 통해 정책을 펼치는 것은 그것을 설계한 사람의 틀 안에서만 가능하다"며 "사람들이 견해를 스스로 말하고 사회 안에서 실제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한데 AI 활용이 ‘더 나은 시민’을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헬싱키 소재 하가헬리아 응용과학대학의 선임연구원 안나 라흐티넨(Anna Lahtinen)은 AI 활용의 양면성을 짚었다. 라흐티넨은 "AI가 효율성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은 게 사실"이라며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멀티태스킹(동시에 여러 개의 작업을 수행하는 것)’ 압박도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강찬구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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