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노숙의 길 빠질 수 있어...'당신도 살아갈 수 있다' 희망 줄 것"

노자1.jpeg
지난해 '수원연극축제'의 무대에 '극단 노자(김성열 상임연출)'가 올랐다.

 '집'이라는 제목의 40분짜리 연극은 노숙인들이 느낀 삶의 애환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간 많은 오해와 편견으로 외면했었던 이야기에 관객들은 귀 기울였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 연극이 관객과 쉽게 교감할 수 있었던 것은 노자의 단원이 모두 노숙인들로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삶의 벼랑 끝자락에서 간신히 올라온 이들의 모습은, 관객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씨 하나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극단 노자는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서 노숙인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든 단체다.

 이제 노자는 단순히 노숙인들이 모인 연극 단체를 뛰어넘어 사회의 어두운 곳에 희망의 불빛을 비추고 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나도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심어준 노자.

 노자의 단원들은 자신이 꾸었던 '희망'과 '꿈'을 전달하기 위해 오늘도 힘차게 달리고 있다.

 #다시 서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노숙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대한성공회 수원교회에서는 수원의 노숙인들을 돕기 위해 '나눔의 집'을 설립했다. 나눔의 집에서는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리고 2007년 체계적인 지원과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수원다시서기상담센터'를 설립했고, 2011년 관련 법령에 따라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후 경기도, 경기대학교와 함께 실용적인 인문학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힘을 모았고, 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생겨난 것이 바로 극단 노자이다.

 노자는 단순히 인문학프로그램의 일부가 아니다. 1년 동안 성실히 극단 활동에 참여하면, 일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을 뿐만 아니라 센터에서 지원하는 임대주택에 들어가게 된다.

 "일반인들도 한 가지 프로그램을 1년 이상 배운 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노숙인 들이야 말할 것이 없죠. 그래서 센터는 연극 활동을 노동으로 인식하고, 이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매달 일정의 활동비를 지급하고, 이중의 일부를 1년 동안 모으면 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임대주택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집과 일이 있으면 노숙의 길에서 탈피할 수 있습니다. 집이 있으면 안정이 생기고, 일자리를 찾게 되죠. 그렇게 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는 겁니다."

 현재 30여명의 노숙인들이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이들 중에는 소규모 매점을 얻어 운영하거나, 직장에 들어가 재기에 성공한 사람도 있다. 이들은 1년의 과정을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배우고, 잃어버렸던 꿈과 희망을 다시 찾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연극의 역할이 가장 컸다.

 "연극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능은 매우 큽니다. 연극이 가진 치유의 힘은 어마어마하죠. 연극을 함으로 인해서 마음속의 상처와 아픔을 돌아보고, 치유 받게 되는 것이죠."

 이들을 돕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많다. 

 "노숙은 특별한 누군가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노숙의 길로 빠질 수 있습니다. 가령 직장을 잃거나, 교통사고로 몸을 크게 다치거나, 충분히 우리에게 열려진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숙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사회가 조금의 기회는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회성적인 지원이 아닌 이들 스스로가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죠. 세끼를 굶으면 담을 넘게 돼 있습니다. 도둑이 되는 거죠. 이러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도 관심을 갖고 도와야 합니다. 노자에는 알콜릭,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빠지지 않고 연습에 참여하는 이유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집에 대한 희망' '살 수 있겠다는 희망' 이런 희망 때문에 이곳을 찾아옵니다. 이런 희망을 누가 줍니까. 사회가 줘야하는 겁니다."

노자22.jpeg
▲ 팔달구 수원교회 노숙인 극단 '노자'에서 소속배우들이 합창연습을 하고 있다.
#희망을 나누다

 노자는 지난해 수원연극축제에서 첫 선을 보였다. 반응은 뜨거웠다.

 "4월부터 연습에 들어가 8월에 무대에 올랐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죠. 집에 대한 향수, 집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관객과 소통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의 마음 속에 있는 상처들을 어루만져주는 시간을 가졌죠."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수원의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 선생의 생애를 다루는 연극 '필동 임면수'를 공연한다.

 "8월15일 광복절을 맞아 수원의 대표적 근대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임면수 선생을 조명하는 연극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1907년부터 1930년까지 수원 독립운동의 배경과 모습을 보일 예정입니다."

 특히 이번 공연은 노자뿐만 아니라 실버극단 청춘극장, 다문화극단 모아, 금빛합창단 등 4개 단체와 더불어 30여년의 경력을 가진 극단 성이 함께 한다. 무엇보다 노숙자, 다문화, 실버세대와 프로극단이 함께한다는 의미와 상징성이 크다.

 "젊었을 때는 오직 성공만을 위해 달려왔습니다. '나 잘났다'고 연극이 가지고 있는 어마 무시한 힘을 간과하고 살아왔던 거죠. 하지만 노자에 상임연출로 참여하면서 세상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오히려 저 스스로가 이들에게 많은 치유를 받을 수 있었죠.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하는 무대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삶의 희망을 얻어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전국의 노숙인 쉼터를 대상으로 순회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전국 노숙인 쉼터를 다니며 순회공연을 할 계획입니다. 일반 관객보다는 같은 노숙인에게 보여 그들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합니다. 실버세대가 실버세대에게, 다문화가정이 다문가정에게, 노숙인이 노숙인에게, '당신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줘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땅만 판다고 기름이 나오나. 노자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사회의 책임으로 남아있다.

 "노숙인은 괴물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웃이며, '아 대한민국~'을 함께 응원하는 우리 국민입니다. 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다시 살아 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송시연기자/shn8691@joongboo.com

 사진=이정선기자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