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 '묻지마 구매'] (上) 업체에 의존하는 官
도청 통합 HD방송 시스템 구축, 업체 도움 받아 설계 후 목록 작성
비교견적 통한 저가구입 안통해...2천만원 장비 8천만원에 구입도

 23일 열린 경기도의회 운영위원회의 도의회 사무처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는 최근 본회의장에 설치한 2억원 대 HD급 방송 장비 구입 과정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짜고치기’, ‘끼워팔기’, ‘혈세 낭비’ 등과 같은 전형적인 비리 사슬 의혹이 꼬리를 물었지만, 담당 공무원 입에서는 ‘적법한 절차를 밟았다’는 답변만 나왔다. “2천만원에 살 수 있는 카메라를 8천200만원에 구입했다”는 추궁이 이어졌지만, “해외 직구 가격이다. 기술·품질지원 등이 제외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도의회 사무처가 이처럼 비리 의혹에 휩싸이게 된 것은 소니코리아㈜·디브이네트스㈜ 2곳과 사전에 물품 공급 계약을 맺어 놓고 입찰을 통해 장비를 납품한 사업자를 선정한 것이 원인이다.

‘원하는 수준의 제품을 적정 가격에 구입하기 위해서였다’는 해명을 색안경 끼고 볼수 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도의회 사무처가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신(新)제품, 신공법 같은 새로운 기술은 공무원을 속칭 ‘호갱님’(호구+고객님)으로 만들고 있다.

비(非) 전문가인 공무원 입장에서는 업체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예산을 절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혈세가 낭비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리백화점이 된 방산비리도 이런 구조 속에서 출발했다.

지난 12일 열렸던 경기도청 통합HD방송시스템 구축 사업 설명회가 대표적인 예다.

경기도는 29억원을 들여 기존 SD방송시스템을 HD급으로 교체하기로 하고, 업체 4곳을 골라 필요한 장비 리스트를 건네 받아 짜깁기한 장비 목록을 이날 설명회에 공개했다. 잠재적 공급자인 업체들의 도움을 받아 시스템을 설계한 뒤 구입 장비 목록을 만든 격이다.

공무원이 비교견적서를 받아서 낮은 가격에 장비를 구입하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지만, 신제품·신공법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경우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만일 업체끼리 담합할 경우 도의회 사무처가 도청과는 별도로 23억원을 들여 구축하려는 상임위원회 방송시스템을 나눠먹을 수 있다. 도의회 사무처도 4~5개 업체로부터 장비 리스트를 받아 놓은 상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도청과 도의회 방송시스템의 경우 지금의 방식대로 진행되면 특정 업체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담당 공무원은 아무리 노력해도 묻지마 구매를 하는 호갱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담당 공무원과 업체가 신공법을 고리로 유착한 비리가 적발되기도 했다.

경기도청 소속 한 공무원은 지난해에는 제부마리나항 건설공사에서 발생하는 준설토를 탄도투기장에 처리하는 과정에서 신공법을 제안한 특정 기업에게 107억원 규모의 공사를 수주받을 수 있도록 해준 혐의로 중징계 처벌을 받았다.

김지호기자/kjh@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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