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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에서 일약 스타가수로 변신한 이애란의 노래다. 원곡에서부터 패러디에 이르기까지 애창되고 있다. 이애란은 사실상 오래전 가수다. 하지만 그녀는 가수 이력만큼이나 묵은 노래를 수정해 발표했고 예상외로 곡이 히트해 최근에는 묵은 빚들도 간단없이 청산했단다. 무슨 이유일까. 대개 히트곡들이 그러하듯 우선 노래가 단순명료하다. 나이에 관계없이 따라 부르기 좋다. 음정이나 가사 모두 간결함에 외우기가 좋은 탓도 있다. 요즘 애들 노래가 화성에서 온 것이라면 이애란의 ‘백세 인생’은 그야말로 토종 지구 한국노래다. 마치 퀴퀴한 행주냄새가 배어있는 분식집 아줌마의 에이프런에 향수 격이다.

가사 내용은 또 어떤가. 동네 경로당에 발도 못 붙일 60세부터 현재까지 또 150세에 이르는 가삿말이 나래비 서 있다. 가히 예전 같으면 60을 못 넘기고 죽는 사람이 태반. 그래서 환갑잔치를 성대히 벌인 것도 충분히 이해가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60부터 차분히 밟아 나간다. 6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70세에 데리러 오면 젊어서 못 가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아마도 붙잡으러 온 저승사자에게 한 말인지 옥황상제에게 우회적으로 들으라 한 얘기인지 확신은 없다. 그래도 노래는 다시 100세까지 넘어가다 다시 80세에서 자존심을 내세워 못 간다고 전하란다.

이 노래를 들으며 대개의 장년들은 죽음이 코앞에 닥쳐온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죽음의 부름에 조금은 야속한 것을 노래가 대신 앙갚음이라도 하는 듯 시원함을 느낀다. 마치 이애란이 오랜 무명끝에 얻은 성공을 보며 감동을 얻는 식이다. 송년회의 절정인 이번 주 까지 아마도 이 노래의 후렴구인 ‘전해라’는 모든 유머 코드에 겹치고 있다. 누가 불러도 뭘 시켜도 뭐 해서 못 가고 못한다고 전하라는 식이다. 물론 이렇게 무심코 제공한 인터넷상의 공급이 받아들이는 소비자 각각의 해석에 달려있다. 한 가지, 전해라는 얘기는 직접 할 수도 있는 얘기들을 귀찮거나 내외해서 우회적으로 말하는 성격이 없지 않다. 마치 옛날 양반이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앞에 두고도 하인을 통해 전해라는 식과 다를 게 없다.

명백한 간접대화다. 이 노래에 감동을 느끼는 우리는 사실 모두 전하기를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직접 전화 걸어 얘기하는 것 보다 조금 더 겸연쩍은 대상들을 이용한다. 카카오톡이 그렇고 이와 유사한 메시지 앱이 모두 그렇다. 잘 보이지도 않을 깨알 같은 텍스트를 굳이 그 작은 화면에 찍어 누르는 것이 말 하는 것 보다 쉬워서다. 익숙한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익숙해 생긴 일이다. 휴대전화에 통신사끼리 혹은 전화기 회사끼리 무료로 영상통화 하는 앱이 있어도 잘 이용 하지 않는다. 혹시 잘 못 말할 소지가 있고 다듬지 않은 민얼굴이 걱정되고 그 외 벌어지지 않을 걱정이 앞서서다. 텍스트로 전하는 문자는 자신 있어도 육성은 어색하기만 한 이유도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포기하거나 늦는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얼굴 마주보고 얘기하기가 꺼려져 결혼하기가 어렵다는 다소 이해 못할 얘기가 이해되는 순간이다. 물론 지금 세대들은 어려서 학교 다니라 성장해 직장 다니라 하루에 몇 분밖에 못 본 식구 얼굴들이 낮설기도 하겠다. 발달하는 기계나 다른 여타의 보이지 않은 소프트웨어가 만든 결과물이지만 그리하여 사람들이 단순히 엮이는 일이 측은하기까지 하다. 그 따스하다는 서로의 눈빛을 바라볼 겨를은 없고 설레는 마음으로 손을 잡아보고 싶은 감정도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물론 서로의 관심사에만 간접통화로 이런 여러 메시지만 주고받는 데는 도가 통하신다. 외면받기 싫지만 외면하고 사는 탓이다.

늘 그러했지만 올해도 쳐다보기 조차 싫은 사람들과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들이 모두에게 있었고 각자에게도 있었겠다. 해서 사람들은 좋은 일만 상상하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을 희망하며 또한 가고 싶은 곳만 꿈꾸고 산다. 하지만 늘 상상이 현실을 이기지 못하는 법. 현실에 본연히 살면서 엉뚱한 상상에 삶을 맡길 수 없듯이 전해라만 외치고 살수는 없다. 언제까지 외로움을 핑계로 상자 속 가상공간에서 전하라고 외칠 수만은 없다. 몇 날 있으면 올해의 연장인 새해다. 부르기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웃기는 ‘병신년’ 에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유행할지 궁금하기만 한 세밑이다.

문기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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