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경기천년, 경기 역사 문화의 전개] (8) 새롭게 보는 고려후기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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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문화의 진면-예술적 완성도, 고품격(高品格)

중국 송(960-1279)에 앞서 칭제건원(稱帝建元)을 기치로 황제국가로 당당히 출발한 고려(918-1392)는 우리 역사에서 중세를 점한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이룩한 최초의 통일 국가인 신라와 근세인 조선왕조의 중간에 위치하며, 역성혁명(易姓革命)의 명분과 당위성으로 전 왕조에 대한 폄훼로 인해 평가절하(平價切下) 된 면도 없지 않았다. 때로는 실상을 사서(史書)보다 조형미술이 진솔하게 알려준다.

고려청자는 중국 자기의 영향을 받아 5-6세기 늦게 만들어졌으나, 그 절정기는 엇비슷한 12세기이다. 단순한 모방이 아닌 구별되는 독자적인 양식의 창출로 중국인들은 ‘천하제일’로 기록하고 있으니 이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제지술의 발달로 고려시대 생산한 질 좋은 종이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의 출현을 가능케 했다. ‘고려지(高麗紙)’라는 명칭으로 일찍부터 그 명성을 떨쳤으니 중국에선 이를 보물로 여겨 상찬했다. 쥘부채인 합죽선(合竹扇)이 중국에 앞서 고려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도 이에 힘입은바 크다.

‘원말 사대가’ 중 황공망(黃公望·1269-1353)의 우리 종이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고려에서 보낸 외교문서 이면에 그림을 그려 오늘날까지 전하기도 한다. 그는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이른바 남종문인화의 맥맥한 긴 흐름에 있어 선두를 점해 조선말까지 영향이 지속된다. 청말기 개성주의 화가인 화암(華?·1682-1756) 또한 화폭으로 고려지를 선호했다. 청신하고 생동감 넘치는 개성적인 화풍을 이룩한 그는 복건성의 제지업자 집안 출신으로 종이에 대한 남다른 식견을 지녔으며 그의 호 신라산인(新羅散人) 또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신라 통일에 앞선 당, 고려시대 몽골, 조선에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이민족의 간헐적인 대규모 침략으로 문화유산 중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분야가 목조건축과 비단과 종이에 그려진 서화이다. 1978년 가을 일본 야마토분가간에서 개최한 고려불화 특별전을 통해 비로소 그 진면이 알려졌다. 고려불화는 공예의 청자와 나전칠기에 필적하는 완성도가 뛰어나며 장엄하고 화려하며 섬세한 기법 등 예술적 수준과 완성도에 있어 괄목되는 분야이다. 고려불화를 제외하면 국외로 반출된 것까지 포함해도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일반회화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의 숫자에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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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통한 고려 그림-분야별 큰 발전과 성취


고려시대 서화는 송과 원과의 빈번한 교류 등 이전보다 크게 발전했다. 소식은 그의 생존시부터 고려에 명성이 전해져 그의 학문과 예술 모두를 흠모했다. 연경에서 조맹부를 비롯한 송 유민 학자들과 교류로 서화 모두에서 국제적인 안목을 갖추게 됐다.

오늘날 ‘두 마리 산양’을 비롯해 한 두루마리에서 나뉜 양 그림 단편과 몽골풍의 인물의 사냥장면을 담은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 등 수렵도 잔결과 전칭작인 ‘염제신(廉悌臣) 초상’ 등을 남긴 왕조 말기 공민왕(恭愍王)을 비롯한 적어도 다섯 임금을 비롯해 귀족과 학자, 승려들도 그림 그리기 및 감상을 즐겼다.

불화와 도교의 성행에 따른 각종 불화를 비롯한 종교화 계열, 초상화를 배향하는 진전제도로 초상화가 크게 발전했고, 감상을 위한 일반산수화와 선비들이 묵희로 즐긴 사군자 화목도 그려졌다. 실경을 그렸고 이녕(李寧)처럼 중국에까지 명성을 떨친 화가들도 등장하며 작품은 전하지 않으나 문집이나 사서류 등 문헌에 언급된 제시(題詩)를 통해 즐겨 그린 주제나 내용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짐작은 가능하다.

문양의 회화성-문양과 그림의 함수관계

11세기 말까지는 고려청자 표면을 장식한 문양은 대체로 중국 북송시대 것이 주종을 이룬다. 그러나 12세기 전반기부터 갈대와 부들 및 갯버들이 어우러진 늪가에 기러기 등 물새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정경(蒲柳水禽文), 새하얀 학과 구름이 어우러진 것(雲鶴), 들국화(野菊) 등이 고려에서 선호한 무늬로 바뀐다. 이들 무늬는 청자 외에 금속과 목칠공예서도 만날 수 있다. 이들 문양은 청자의 푸른 바탕을 배경으로 불교와 도교가 어우러진 청정하며 고즈넉한 분위기가 짙게 배어있다.

중국 매병에 연원을 두고 있으나 고려 나름의 유려한 곡선으로 일반적인 형태를 이룩한 매병 몸통에는 빈번하게 매화와 대나무가 함께 등장한다. 이는 인도 판 오디푸스 콤플렉스를 다룬 14세기 ‘관경변상서분(觀經變相序分)’에는 인물 뒤에 드린 2폭 가리개에 묵죽이 등장한다. 그림 속 그림으로, 이 고려불화 세부를 통해 어엿한 고려의 묵죽을 살필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청자 무늬 기법 중 직접 그린 철화의 경우 필치에 있어 붓 자국을 보듯 회화성이 짙다. ‘청자철화 버드나무문 병’2-1의 앞과 뒤 2면에 붓으로 친 듯 나타낸 철화(鐵?) 기법 중 버드나무는 간일한 필치로 선종화(禪宗?)에 방불하다 하겠다. 또한 마치 요(遼) 고분에서 출토된 초중도 범주의 그림과 가까우며 조선시대 16세기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의 초충도에 선구적인 모습을 보이는 민들레나 재배한 국화도 살필 수 있다.

건축물의 벽면에 부착한 일종의 타일이나 목가구의 문짝 등에 끼운 용도로 제작된 도판 들이 전한다. 도판의 두께로 미뤄 용도를 가름하기도 한다. 비교적 두텁지 않은 작은 도판 중에 물가풍경 외에 ‘청자상감 매죽조문 도판’2-2 경우 당시 영모화의 수준을 대변한다. 일종의 화조화 영역으로 매화 대나무에 깃든 새는 송 휘종이 남긴 화조와 구성이나 표현에서 일종의 국제성까지 감지된다.

세한삼우도(歲寒三友圖) 외-사군자 이전의 삼청(三淸)

고려태조 왕건의 능은 벽화고분이다. 무덤 내 동서쪽 즉 좌우 하단에는 사신도로 용과 호랑이가 그 위로 소나무, 대나무와 매화가 그려져 있다. 사군자와 별도로 매화와 대나무에 소나무를 포함시켜 추위를 이기는 강인한 세 식물을 ‘세한삼우’나 ‘삼청’이라 부른다. 이를 화폭에 담아 ‘세한삼우도’나 ‘삼청도’로 칭한다. ‘논어’에 언급된 이로운 친구 셋(益者三友)은 강직하며 아량이 넓고 박식한 이들이다. 중국에선 화조화에서도 새가 깃든 나무를 나타냄에 삼우를 함께 나타낸 변문진(邊文進·15세기 초)의 ‘삼우백금도(三友百禽圖)’ 명품이 전한다.

마찬가지로 일반 감상화에 소나무를 중앙에 두고 좌우에 그보다 작은 비중으로 매화와 대나무를 그린 14세기 고려 그림 ‘세한삼우도’가3 일본에서 확인됐다. 해애(海涯) 스님의 작품 제목인 ‘세한삼우’와 함께 제시가 있어 한때는 그의 그림으로 간주되기도 했으나, 해애의 제시가 있는 작가는 미상으로 그림으로 봄이 일반적이다. 이 그림이 일본에 이어 국내 전시에도 출품된 적이 있다. 조선 초 안견에 이어 명성이 높은 화원 이상좌(李上佐·15세기) 그림으로 전하는 ‘송하보월도(松下步月圖)’나 조선 초 최고의 문인화가인 강희안(姜希顔·1417-1464)의 ‘절매삽병도’ 등 산수인물화의 배경에 이 세 식물이 등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겠다.

이원복 동국대 겸임교수 · 전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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