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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에서 한국의 단색화가 세계인의 시선을 잡고 있다. 한국의 단색화(Dansaekhwa)는 아날로그회화 양식으로, 반복된 수련의 과정이 담긴 작업이다. 형상을 그리는 대신 특정한 행위를 반복해 평면을 표현하는 추상기법이다. 한지나 물감을 덧입혔다가 긁어 없애는, ‘공(空)’의 상태를 만드는 동양의 정신세계와 닮아있다. 역사와 전통에 뿌리를 둔 한국의 단색화는 서양에서 더욱 인기다. 서양의 미적 정서와 구별되는 고유의 특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색화를 이끄는 작가 박서보·하종현·정상화·윤형근 등은 대부분 서양화 전공자다. 그런데 최근 주목을 받는 권영우는 동양화에 기반을 둔 작가다.

권영우(1926~2013)는 해방 후 제1세대 작가다. 다른 단색화 작가들이 캔버스를 들고 실험할 때 권영우는 화선지를 택했다. 1962년 전후로 필묵을 버리고, 주로 손톱을 이용해 하얀 화선지를 동그랗게 뚫고, 자르고, 긁고, 혹은 뾰족한 도구로 종이를 긁어내거나 물감을 번지게 한 뒤 다시 종이를 덧대는 작업을 했다. 이러한 작업은 화선지를 이용한 구멍 뚫기나 겹침의 기법으로,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종이와 몸으로 그린 그림이다. 반복적 행위를 통한 끈질긴 자신과의 싸움인 것이다. 권영우는 1970년대 후반 파리체류시기에도 고국에서 화선지를 가져다 작업했다. 필묵을 내려놓고 평생 종이와 대면하면서도, 동양화의 뿌리를 꿋꿋이 지켜온 작가의 작품은 동양화의 새로운 영역을 이룬 것이다.

단색화 열풍의 주역인 박서보·정상화·윤형근·하종현 4인의 국내 경매 총액을 보면 2014년 50억 원 수준에서 지난해 323억 원이다. 특히 홍콩 경매 총액은 1년 새 16배로 늘어났다고 서울옥션이 발표했다. 그 결과는 단색화를 태동시킨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의 재평가로 이어지고,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한국의 작가 군 발굴로 이어가려는 조짐이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단색화 이상과열현상에 대처하는 유연한 움직임으로 보이나, 우리의 미술시장이 모범적인 화상을 길러내지 못한 최대약점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모처럼 맞이한 우리의 단색화열풍이 세계미술시장에서 긴 행보로 나아가기위해서는 가장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최경자 화가·문화컬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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