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참여를 위한 국제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Public Participation; IAP2)(2007)는 시민참여의 단계를 ▶정보제공(information) ▶협의(consult) ▶개입(involve) ▶협업(collaborate) ▶권한부여(empower) 등 5단계로 구분했다. 이와 같은 틀을 적용한다면, 우리나라의 공공정책이나 정부계획에서 시민참여 제도나 실천 수준은 1단계의 정보제공이나 2단계의 협의 수준에 그친다고 할 수 있다.

도시계획 분야를 본다면, 법과 시행령에 규정된 시민참여 방식의 실천은 매우 형식적이고 낮은 수준이다. 경기연구원의 연구결과(2015)에 따르면, 경기도 내 31개 시·군의 도시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법령에 규정된 방식 외의 새로운 시민참여방식을 적용한 경우는, 자문단 운영이 28개 시?군(90.3%), 시민 간담회 개최가 24개 시?군(77.4%), 시민계획단 운영이 3개 시?군(9.7%)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는 계획 수립 과정에서 시민의 개입, 협업, 시민에게 방향 결정을 맡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 국내 지자체들이 실천한 시민참여 도시계획 사례들은 많은 성과도 있었다. 먼저 도시계획 자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사전에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수립된 계획에 대한 수용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 전문가들과 공무원들 또한 일반 시민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참여하는 시민’의 육성에도 큰 역할을 했다. 시민참여 프로그램으로 시정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려는 ‘시민’들이 늘어났고, 참여경험을 가진 시민의 증가는 역으로 다시 참여의 질적인 수준을 올리는데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시민참여 프로그램에 시장, 부시장뿐만 아니라 시의원 등 정책결정자들이 많이 참여하면서 사전 공감대가 형성돼 도시계획이 정한 미래상과 전략들을 추진하는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위에서 진단했듯이 한계도 많다. 우선 가장 큰 한계점은 참여 대상 선정과 대표성의 확보문제이다. 참여자 선정에서 시민의 대표성이 확보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에 의거해 참여를 거부하는 경향도 있었다. 다음으로는 시민참여 과정에서 나온 의견들이 시·군의 공식적인 정책방향과 달라 갈등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고, 이를 해소하고자 어정쩡하게 절충하는 경우들도 많았다. 일부 시민들은 지역 전체적인 시각보다는 자신과 관련된(대표적인 것이 내 땅이나 내집의 부동산 가치 상승) 이해관계자의 시각으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또 미래 세대가 충분하게 참여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었다. 20년 후의 장기 계획의 경우 현재의 중·고등·대학학생들이 주역이 되지만, 이들은 입시나 취업 준비 등으로 도시계획 수립과정에 직접 참여하기 어려웠고, 토론과정에서도 어른들과 수평적인 관계에서 동등하게 역할을 하는데 장애도 많았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을 참여시키는데 드는 비용 대비 효과의 문제가 있었다.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면 모임을 개최하는 시간, 인력, 예산이 많이 소요되지만, 시민들이 정하는 미래상이나 계획의 방향은 평이한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서 회의적인 평가도 많았다.

이와 같은 실태 진단, 과제 도출을 토대로 할 때 경기도와 시·군이 도시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는데 있어서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도화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경기도와 시군이 목표로 하는 시민참여 제도화 수준을 3단계인 시민이 정책결정에 개입(involve)하는 수준이나 4단계인 시민들과 협업(collaborate) 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첫째, 계획 도시수립 착수단계에서부터 시민참여계획서를 작성하고, 둘째, 도시계획 입안 초기단계에서부터 시민협의회를 운영하도록 의무화하며, 셋째, 개방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SNS나 모바일 환경을 적극 활용하며, 넷째, 심의용 계획안 제출 시 부속자료로서 시민참여보고서 제출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도시계획이 아닌 교통계획이나, 환경계획, 경제계획, 사회계획에도 공히 적용될 수 있다. 최근 사드 배치나, 군비행장 이전, 발전소 설치, 님비시설 설치 관련 계획에도 염두에 두면 좋을 것이다.


 이상대 경기연구원 경영기획본부장·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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