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셀 뒤샹, <샘>, 1917, 남성용 소변기, 36×48×61cm
마르셀 뒤샹의 <샘>은 누가 뭐래도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작품이다. 1917년 미국 독립예술전에 이 작품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품은 다름 아닌 남성용 소변기였고, 작가가 그 작품을 위해 한 일이란, ‘R. MUTT’라는 서명을 한 것과 그것을 전시에 출품한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재능과 불타는 열정으로, 장인정신에 입각한 위대한 예술작품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어쩌면 예술을 향해 내건 반기이기나 모독에 가까웠다.

마르셀 뒤샹이 활동하던 시기는 1차 세계대전 직후다. 고귀한 이성과 합리성이 인간의 삶을 구원할 것이라 믿었던 모더니즘의 청사진은 바로 그 시대가 만들어낸 기계문명의산물이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참혹한 전쟁을 겪으며 물거품이 되었다. 예술가들은 바로 그 상황에서 기존의 모든 역사적 가치와 질서, 의미를 부정하고,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것, 무의미하거나 아직 의미화되기 이전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면서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다다이즘(dadaism)’이라 불리는 이 운동은 취리히에서 시작되어 유럽과 미국까지 퍼져나갔다. 뒤샹 역시 다다이즘의 정신을 구현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다다이스트(dadaist)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마르셀 뒤샹은 뉴욕의 화장실용품 제조업자인 리처드 머트의 이름을 딴 ‘R. MUTT’라는 서명을 한 소변기를 전시장에 내놓음으로써 기성품을 애초의 용도가 아닌 다른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변신시켰다. 이를 계기로 미술사는 아예 ‘레디 메이드’라는 미술용어를 만들어내게 되기도 했다. 배설을 위한 장치를 새로운 것이 솟아나는 샘이라고 역설하는 이 작품의 등장은, 기존의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가 오히려 놀라운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혁명적으로 보여준 사건일 것이다.

예술이 갖고 있는 근엄한 전통을 비웃고, 예술 스스로가 부여한 권위를 조롱하면서, 뒤샹은 오히려 천재적인 화가가 아닌 평범한 그 누구도 새로운 생각을 갖고 일상의 삶을 실천하는 것만으로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태도를 증명이라도 하듯, 뒤샹은 그 독특한 예술 세계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무렵, 서른다섯의 나이에 홀연 작품 활동을 접고 프로 체스 선수가 되었다. 어쩌면 뒤샹은 어느 것 하나에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제도와 틀 바깥에서 버려지는 것들을 살리기 위해 따뜻한 손을 내밀었던 예술가였는지도 모른다.

 황록주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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