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장애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이 제가 계속해서 마라톤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에요.”

시각장애를 극복한 마라토너 김미순(56·여·시각장애 1급)씨는 우리나라 여자 마라토너 역사상 6명밖에 달성하지 못한 울트라 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자다.

이 중 5명은 모두 비장애인이며 2번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는 김씨가 유일하다.

울트라 마라톤은 마라톤 풀코스인 42.195㎞보다 훨씬 먼 거리를 달려야 한다.

강화~강릉 308㎞구간 대회와 부산~임진각 537㎞, 해남~고성 622㎞ 세 코스를 완주하면 울트라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김씨는 지난 1988년 눈 안에 염증이 생겨 시력을 잃는 희귀병인 베체트병을 진단 받았다. 이후 1999년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40년간을 비장애인으로 살았던 그녀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김씨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남편 김효근(56)씨 덕분이다.

김씨는 “의사가 운동을 하라고 권고해서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2002년 남편이 덜컥 강화 마라톤 대회를 접수했다”며 “처음에는 남동생의 손을 잡고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대회에 참가한 후 그녀는 마라톤에 대한 재미가 붙었다. 혼자 뛰는 것보다 여러사람과 함께 달린다는 기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을 이끌어 주는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남편과 함께 끈으로 서로를 묶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남편 김효근씨는 아내의 마라톤을 위해서 본업인 카센터 일도 잠시 접고 아내를 도왔다.

김씨는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달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공포와 싸워야 한다”며 “동반주자와의 믿음이 없으면 마라톤을 절대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산악회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해 어제가 결혼 30주년이었다”며 “남편은 내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를 그냥 안다. 마라톤을 달릴 때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는 자상한 남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선행을 펼치는 마라토너로도 유명하다. 지난해부터 1㎞를 달릴 때마다 후원사인 인천가스공사에서 1천 원씩을 적립해 장애인 체육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지난해 그녀는 공식대회만 3천800㎞를 뛰었다. 380만 원의 후원금이 생긴 셈이다.

최근 김씨 제10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한 김태연(예림학교·역도) 선수, 김주영(해원고·수영) 선수 등 6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김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두 가지 삶을 모두 살아보니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며 “내가 뛰는 한 발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마라토너로서 김씨 부부의 최종 목표는 미국을 달리기로 횡단하는 것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4개월에 걸쳐 5천60㎞를 뛰어야 한다.

김씨는 “미국을 종단하기 위해 후원을 받으려고 노력 중”이라며 “우리 부부의 꿈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돕기 위해 반드시 해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기정기자/ckj@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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