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역의 한 어린이집 원장 A씨는 최근 나쁜 습관이 있는 아이를 훈육한 후 학부모에게 알렸지만, 어린이집에 설치된 CCTV 탓에 300만 원을 건네주고 합의해야 하는 일을 겪었다. 사정은 이렇다. 이 어린이집 보육교사 B씨는 평소 아이들을 무는 습관이 있는 C(만1세)군 때문에 다른 학부모들에게 아동학대 의심을 받게 됐다. 수차례 타일렀지만 C군이 다른 아이를 무는 버릇을 못고치자 C군의 팔을 물어 다른 아이들의 겪는 고통을 느껴보게 하는 훈육 방식을 생각해냈다. B씨는 C군의 팔을 살짝 문 뒤 "친구들도 똑같이 아프니까 하지 말라"고 타이른 후 안아주면서 다독거렸고, 이런 모습은 모두 CCTV에 모두 찍혔다. 같은 날 오후 B씨는 C군을 학부모 D씨에게 인계하는 과정에서 훈육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방법 등을 모두 설명해줬지만, D씨는 이튿날 B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CCTV를 확인한 경찰은 교육 목적이라도 아동학대에 해당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합의해보라는 제안을 했다. D씨는 합의금 700만 원을 요구했고, 원장 A씨는 보육교사 B씨 대신 300만 원을 건네줬다.

아동학대 방지 목적으로 모든 어린이집에 설치한 CCTV가 이처럼 보육교사 협박도구로 악용되고 있는 사례다.

최근 일부 학부모들이 어린이집 CCTV 영상 공개를 요구하고, 녹화된 장면을 증거로 삼아 수백만 원대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블랙학부모'들이 CCTV 녹화 장면을 아동학대의 증거물로 앞세우는 CCTV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경기지역 어린이집 1만2천281곳에는 현재 한 곳당 적게는 4~5대, 많게는 30~40대의 CCTV가 설치돼 있다.

경기도어린이집연합회 관계자는 25일 "최근 학부모들의 CCTV 녹화 장면 공개 요청이 부쩍 늘고 있다"면서 "단순 훈육이나 실수에 의한 상처인데도 CCTV 영상을 근거로 경찰에 아동학대로 신고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경찰에서도 아동학대로 볼 수 없지만 CCTV에 녹화돼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사건처리 또는 사전합의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한다"면서 "학무보들은 합의금 명목으로 300만~700만 원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아동학대로 볼 수 없을 정도의 경미한 훈육이라도 CCTV에 녹화됐고 아동학대 신고 접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라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학부모와 합의하지 않으면 보육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입건될 수 있기 때문에 어린이집 원장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대부분 합의한다.

한 어린이집 원장은 "뛰어다니는 아이를 잡는 과정에서 난 상처를 설명해주고 CCTV 영상까지 보여줬는데도, 며칠 뒤 경찰에 신고를 하더라"면서 "아동학대는 아니지만 '상해'로 합의금 수백만 원을 달라고 해서 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원장은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맘카페 등 온라인 학부모 모임 등에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려 어린이집 운영을 못하게 한다"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금을 주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 몰지각한 블랙학부모탓에 어린이집에서는 잘못된 습관을 갖고 있는 아이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학부모들의 무리한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재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익균 협성대 아동보육과 교수는 "CCTV로 아동학대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학부모가 합의금을 요구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할 때에는 신고자(학부모)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면서 "학부모에 대한 교육이나 안내지침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복진·오정인기자/bok@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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