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없다-(2)가족도 모르는 내 아내의 비밀

이제는 100세 시대, 보다 건강하고 보다 행복하기 위해선 신체 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도 함께 챙겨야 할 때다. 하지만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해 음주 문제를 방치하거나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성들은 사회적인 편견이나 주위 시선 때문에 문제를 감추는 경향이 높다.

안양시에 거주하는 최 모(50)씨도 오랫동안 음주 문제를 숨겨온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자녀의 해외 유학과 군 입대로 집을 떠나고 갱년기까지 겪으면서 그녀는 기분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남편은 야간근무로 아침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기 때문에 그녀가 매일같이 술을 마신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 했다. 유학 간 딸이 방학을 맞아 귀국하면서 엄마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에는 이미 금단증상을 느낄 만큼 심각한 중독 상태에 이른 뒤였다.

최 씨는 다행히 가족들의 적극적인 대처로 병원을 찾아 입원치료를 받고 있지만, 보통 여성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자신의 음주 문제를 겉으로 드러내길 극도로 꺼리며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공개된 장소가 아닌 집에서 혼자 몰래 술을 마시다 보니 주변에서 음주 문제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아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병원을 찾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같은 현상은 ‘여자가 술을 마신다’ ‘엄마가 술을 마신다’고 비난하는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의 영향이 크다. 자녀들 역시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의 음주 문제에 대해 훨씬 더 혹독한 평가를 내리기도 하며 때로는 음주 문제를 이유로 이혼을 당하기도 한다.

여성은 신체 구조상 남성에 비해 알코올에 취약해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예를 들어 남성이 10년 동안 술을 마시고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다고 했을 때, 여성은 그보다 2배 빠른 5년 내 병이 진행될 수 있을 정도로 피해가 크다.

그럼에도 여성 음주자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얼마 전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2015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우리나라 여성의 월간 폭음률은 10년 전 17.2%에서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23.2%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주류회사들이 여성들을 겨냥한 저도주, 과일주를 경쟁적으로 출시해 술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여성들의 음주를 부추기고 있다. 심지어 아이들의 놀이공간인 키즈카페에서 엄마들을 위해 버젓이 술을 팔기도 한다.

이러한 분위기라면 여성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순간에도 몰래 술을 마시고 있는 그녀가 바로 당신의 가족일 수 있다. 지금 내 아내의, 우리 엄마의 음주습관을 살펴보고 문제가 느껴진다면 전문치료를 받아야 한다.

허성태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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