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단체 상징처럼 변질...탄핵기각 촉구 오인 우려 만세운동 재현행사 등 고심

3·1절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이 맞물리면서 ‘태극기’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만세운동 재현 등 매년 행사를 열던 지방정부들은 태극기를 이용한 행사가 자칫 탄핵 결정 기각을 촉구하는 친박단체집회로 오인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집에 태극기를 게양하면 친박단체회원이나 탄핵기각을 촉구하는 뜻으로 보여질까봐 3·1절에 태극기를 걸지 망설여진다는 글도 올라온다.

전문가들은 대통령 탄핵정국에 한쪽이 태극기를 집회에 이용하면서 태극기 의미가 왜곡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태극기=탄핵기각’, 딜레마에 빠지다

탄핵인용 측이 촛불을 들었다면 탄핵기각 측은 태극기를 들었다. 이 집회를 일각에서 ‘태극기집회’로 부르면서 태극기는 어느새 친박단체이자 탄핵기각 촉구의 상징처럼 됐다.

인천 계양구 등 일부 지자체들은 매년 3·1절 만세운동을 재현하고 있지만 최근 고민이 커졌다.

태극기 수백개가 휘날리면 탄핵기각 집회로 오해받을 수도 있고, 혹여 해당 단체 인원이 참석해 구호를 외칠 경우 행사 목적이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3·1절 행사를 열 인천 부평구와 인천시청 미래광장에서 기념행사를 갖는 남동구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행사 중 태극기를 나눠줄 예정인데 자칫 탄핵기각 촉구로 오인될까 우려하고 있다.

▶집에도 못 걸겠다

상당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웃지못할 글들이 올라와있다. ‘초등학생 아들이 3·1절에 태극기를 집 베란다에 걸겠다고 했는데 이걸 놔둬야할지, 말려야 할지 모르겠다. 남들이 우리집을 친박으로 볼까 걱정된다’, ‘요즘 태극기만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3·1절에 태극기 게양을 하지않겠다고 마음먹은 현실이 슬프다’ 등이다.

태극기가 탄핵기각 등 특정 정치적 성향이나 목적을 담은 의미로 변질됐고, 이미 적잖은 시민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탄핵 찬성의견이 60~70%대를 유지하는 만큼 태극기에 대한 우려가 소수 얘기는 아닌 셈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태극기 깃대에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을 함께 매달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태극기에 특정 정치적 의미를 담을 수 없다

정영태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 국가권위와 반공주의 의미였던 태극기는 이후 민주주의 의미로 성숙했는데 최근 탄핵 정국 속에 구시대로 회귀한 것 같다”며 “특정 집단과 연계해 생각치 말고 국경일인 만큼 정치적 의미는 따로 분리해 국기를 게양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태극기 의미를 (특정세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담아내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넘어 남용하는 것이라 안타깝다”며 “특히 대통령 탄핵과 대한민국을 동일시하면서 태극기를 내세운 것은 위험하고 동의할 수 없는 사고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김요한·김상우기자/yohan@joongboo.com

▲ 박근혜 대통령 탄핵기각을 주장하는 보수단체들이 태극기를 이용한 '태극기집회'를 열며 3·1절 행사를 앞둔 지자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7일 인천시 동구 송림오거리에 게양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윤상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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