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직 대통령이 ‘길라임’이라는 가명으로 병원을 예약해서 화제가 되었다. ‘길라임’은 35%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트렌디 드라마인 ‘시크릿 가든’의 여자주인공(하지원 분) 이름이다. 길라임의 상대 남자주인공 역할은 ‘현빈’이 맡았다. 현빈은 극중 재벌회장의 손자이자 백화점 사장으로 등장한다. 부잣집 아들, 해외유학파, 준수한 외모와 패션 센스, 풍부한 상식과 예술적 안목까지 두루 갖춘 현대판 왕자님 역할을 맡으면서 TV를 시청하는 뭇 여성들의 심저에 내재된 신데렐라 본능을 자극했다.

이 왕자님은 품위에 맞게 본인이 즐겨 입는 체육복조차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었다’라며 자신의 명품 자랑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는 호통 같은 질문으로 부하직원들에게 카리스마 녹아든 언변을 구사했다. 현빈은 이 드라마를 통해 단숨에 톱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드라마는 현빈의 위상을 바꾸어 놓은 그의 인생작이었던 셈이다.

전직대통령의 가명 사용 진료예약은 도덕적 해이인가? 일반적으로 공무원들이 뉴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 공직자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와 결부될 때가 많다. 금품수수, 음주운전, 공문서 위조 등의 죄목이 공무원과 엮이면 ‘도덕적 해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 된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공직 기강해이에서 비롯된 공무원 범죄이다.

경제학에서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란 상호 간에 정보의 격차로 인해 감추어진 행동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보험계약 등이 이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운전자가 가입한 자동차 보험만 믿고 안전운전 대신 난폭운전을 일삼는 행위, 집주인이 가입한 화재보험만 믿고 발생가능성 있는 화재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행위 등을 경제학에서는 도덕적 해이라고 한다. 즉, 도덕적 해이는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나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 주체의 행위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되고 누군가 그 상황에 대해서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고 물었을 때, 행위의 주체가 ‘예’라고 대답하지 못하면 그것을 도덕적 해이라고 한다.

사회전반에 다양한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도덕적 해이를 가급적 방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벌칙(penalty)을 부과하는 방식이고 둘째는 유인(incentive)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벌칙부과 방식의 예로는 자동차 보험의 ‘자기부담금 부과’ 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운전자가 자동차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사고발생 시 자차수리비용의 일부를 본인에게 부담케 함으로써 난폭운전으로 인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로 작용한다. 반면, 유인 제공 방식의 예로는 ‘주행거리 할인’ 제도가 있다. 보험가입자가 보험계약기간 동안 일정 거리 미만을 운행하면 보험료를 사후적으로 할인해 주는 방식인데, 운행거리를 가급적 줄임으로써 사고 확률을 낮추도록 유인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도덕적 해이인지 공직기강 해이로 인한 범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길라임이라는 가명으로 병원을 예약했던 대통령은 결국 법의 심판을 받고 불명예스럽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머잖아 계절의 여왕 5월에는 국민들이 새로운 대통령을 간택할 예정이다.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되던지, 그 대통령의 임기종료일에 절대 권력자인 국민들이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고 물었을 때, “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면서 떠날 수 있는 관절(冠絶)한 대통령이 선출되기를 바란다.

조용준 수원시정연구원 재정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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