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상봉, ‘개나리’, 1974년, 캔버스 위에 유채, 53x45cm
긴 겨울이 지날 즈음, 낮은 산기슭이며 이웃집 담장 옆구리에서 노란 색으로 피어올라 봄이 왔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꽃, 하지만 너무 흔해서 ‘나리’라는 꽃말 앞에 반갑지 않은 접두어가 붙어 버린 꽃. 귀하지 않아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노래인 ‘고향의 봄’에도 등장하지 않는 그 꽃, ‘개나리’를 우리나라 근대미술의 대표적인 고전주의 화가인 도상봉은 즐겨 그렸다. 자신이 애장하고 있는 품 넓은 조선백자에 개나리 가지를 무심히 꺾어다가 한가득 꽂아 놓고 봄의 느낌을 작업실로 불러 들였다. 그것도 모자라면 경복궁 향원정을 찾아 개나리 흐드러지게 핀 정원을 바라보며 봄의 향취를 만끽했다. 고고한 선비정신을 일깨워주는 매화도 아니고, 꽃의 여왕이라는 장미도 아니고 부귀와 영화를 가져다준다는 모란도 아닌 천덕꾸러기 개나리를 도상봉은 자신의 정물화 중에서도 으뜸의 것으로 완성시켰다.

특히 이작품은 작가 작고 불과 3년 전에 그려진 것인데 여러 의미에서 도상봉 회화의 완성형을 보여주고 있다. 백자의 둥근 기형과 뻗어 나간 개나리 가지의 방사상 구성이 보여주는 대비, 백색의 도자기와 노란색 꽃잎, 녹색의 잎사귀, 갈색의 탁자를 통해 살펴지는 색채의 조화, 별나지 않게 그저 캔버스 위에 툭툭 던지듯 구사된 붓질임에도 불구하고 캔버스와 완전히 일체화 된 듯한 원숙한 필치 등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잡아끈다. 이런 이유들로 이 작품은 도상봉의 말년작 중 걸작품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 동시에 한국미의 정수를 보여주는 정물화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나비넥타이와 파이프 담배를 즐겨 댄디한 모던 보이의 표상으로 알려졌던 그였지만 자신의 그림에서 만큼은 민족적 자의식을 바탕으로 한국미의 근본정신을 끊임없이 탐구했던 인물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3.1운동 당시 옥고를 치른 것이나 총독부 주최의 ‘조선미술전람회’ 활동을 기피했다든가 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그의 개나리 그림은 중요하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봄이면 이 땅의 어느 산하인들 노란색으로 환하게 밝혀주는 봄의 전령사가 개나리이기 때문이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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