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화창한 봄날의 연속이다. 겨울 내내 시리고 우중충했던 마음이 여름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학생들은 여름방학으로 들뜰 것이고 어른들 역시 휴가다 여행이다 하여 자연을 만끽할 기회가 도래하리라.

마음은 이미 밝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은 음험하기 짝이 없다. 벌써 몇 개월째 국가 원수의 부재로 행정은 난맥상이고 국제정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위기의 연속이다. 주변국에서는 북핵 위기와 한국의 전쟁가능성에 대하여 침소봉대 하고 있으며 이웃 나라 일본은 이를 빌미로 군사력 증진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해외 동포들은 고국에 있는 친인척들이 당장에라도 전쟁의 포화 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

흥미로운 점은 막상 국내 상황은 전혀 위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매일의 일상은 어제나 그제나 한 달 전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으며 누구도 전쟁으로 인한 불안감으로 은행 저금을 찾거나 대형마트의 물건들을 사재기하지 않는다. 간혹 방송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전쟁의 위협에 귀를 기울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일손을 놓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물론 먹고 살기가 워낙 빠듯하여 생업을 포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겠지만, 이어지는 연휴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을 누비고 다니는 것을 보면, 스피노자의 옛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물론 이렇게 한국인 특유의 끈질김과 성실함으로 현재 상황을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그보다는 여러 가지 인지적인 현상으로 이를 설명한다. 그 중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개념은 ‘인지적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이다. 인지적 부조화란 심리학자 리온 페스틴저(Leon Festinger)에 의해 제시된 개념으로서 사람에게는 믿음, 태도, 행동 등에 있어 일관성을 유지하려 하는 강한 경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일단 자의든 타의든 어떤 행동에 개입하게 되면 자신의 믿음이나 태도가 애초에는 그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행동에 맞추어 일관성 있는 쪽으로 향방을 바꾸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1959년 심리학 실험에서 두 집단의 학생들에게 지루한 일을 무조건 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런데, 그 중 한 집단에게는 일에 대한 대가로서 20달러를 지급하고 다른 집단에게는 1달러를 지급하였다. 그랬더니 1달러를 받은 집단이 20달러를 받은 집단보다 훨씬 더 하던 일에 대하여 긍정적인 판단을 하였음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런 현상에 대하여 사후적인 설명을 붙였는데, 즉 20달러를 받은 집단의 학생들은 돈 때문에 지루해도 일에 매달렸던 것이라 스스로 추론하였지만, 1달러만 받은 학생들은 자신들이 왜 굳이 지루한 일을 했었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할 방도가 없다보니 일에 대한 자신들의 태도 즉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반응을 바꾸어, 일이 생각보다 지루하지는 않다고 태도를 변경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같은 인지부조화는 사람들의 다양한 정당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배우자의 외모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남편의 경우 인지적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하여 ‘이렇게 아내와의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옛날 젊은 시절 정말로 나는 그녀를 사랑했었나보다’라고 추론을 해서 인지부조화를 해결한다거나, 많은 노력을 하고도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경우 뒤늦게 그 목표는 삶에 큰 의미가 없었다고 격하시키는 일을 우리는 쉽게 발견하곤 한다.

오늘도 하늘은 파랗고 사방에 꽃들은 만발하였다. 남녀노소 완연한 봄을 만끽하기 위하여 산과 들로 나서고 있다. 이렇게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나가는 것을 보면 아마 북핵 위기는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 아닐 것이며 전쟁의 위험은 실재하기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 위안해본다. 오늘의 평화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전쟁의 위험을 격하시키거나 부인하는 것이 어쩌면 앞서 언급하였던 인지부조화 현상에 딱 부합하는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사태가 위험하다면 이리도 평화로울 순 없을 테니까...

인지적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우리의 본능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나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편리하게 왜곡하고 부인하도록 만든다. 이런 사고의 방향이 미래를 알 수 없는 불안으로부터 현재의 나를 지키고 나의 가족을 지키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인지왜곡은 부디 우리 같은 범인들의 특권이기만을 기원해본다. 이제 선거일이다. 부디 선출되는 지도자는 이런 모든 인지적인 왜곡이나 현실 안주에 현혹되지 말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해 시시각각 벌어지는 국제적 위험을 사실 그대로 용감하게 인식하고 혜안을 찾는 데에 최선을 다해주기를 기원해본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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