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는 제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어 제4차 산업혁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가 제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이 되겠다는 것은 적절한 정책방향이지만,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의 추억으로 인해 새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한 우려도 많다.

사실 박근혜정부는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제조업 혁신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발표하였다. 아직도 개념이 불명확한 ‘창조경제’도 혁신의 관점에서 보면 외형적으로는 타당해 보인다. 박근혜정부는 2014년에 제조업 혁신을 통한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제조업 혁신 3.0 전략’을 발표하였다.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해 나갈 3D 프린팅, 디지털제조기술, 경량화 금속, 스마트 센서, 스마트 메모리, 표준화 모듈 플랫폼, 사물인터넷 등 첨단 분야의 육성도 제안되었다. 2020년까지 1만개 공장의 스마트화 및 제조업과 IT의 융합 등 제조업의 스마트화 추진전략도 발표되었다. 대기업들의 팔목을 비틀어 정부 주도로 설립한 지역별 창조경제혁신센터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발표된 사업들은 성과가 별로 없이 ‘보도자료’로 끝났다. 이는 최순실게이트로 인한 국정마비도 주요한 원인이겠지만 박근혜정부의 관치경제적 발상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다. 시장도 없고 기업도 없던 개발연대에는 정부가 경제성장을 주도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의 창의력을 동력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무대에서의 주연은 기업이다. 정부는 기업들이 제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연이 되어야 성공적인 무대가 될 수 있다. 박근혜정부는 가장 창의적이지 않은 주체인 정부가 이른바 ‘창조경제’를 주도하려 했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제4차 산업혁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정부는 무엇보다도 시장과 기업을 신뢰해야 한다. 정부가 기업들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시장메커니즘에 대해 불신하면, 박근혜정부와 이유는 다르더라도 결국은 관치경제의 부활과 함께 한국의 제4차 산업혁명은 표류하게 될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인 ‘제조업 혁신’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의 투자를 저해하고 혁신의지를 꺾는 모든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다. 제조업 혁신이 필요한 이유는 시장이 원하기 때문이며 시장의 수요에 맞추어 혁신이 되어야 기업이 성공하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 정부가 산업이나 시장에 개입하게 되면 또 다른 규제를 양산하거나 자원배분이 왜곡될 수 있다. 또한 정부는 독일의 ‘산업 4.0 플랫폼’과 같이 민간, 학계, 사회적 파트너 등 제4차 산업혁명과 관련이 있는 모든 주체들이 참여하는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역할에 매진해야 한다. 이러한 협력체는 정부의 단순한 들러리 자문회의가 아니라 제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전략, 정책방향, 사업 설계 및 집행 등을 함께 준비하고 모든 경제주체들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드는 실질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 물론 이러한 협력체는 정부가 만들더라도 민간에 의해 주도되어야 한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정부의 역할은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여 사회통합을 강화하는 것이다. 급격한 기술혁명은 경제적·사회적으로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자생력이 있는 대기업은 스스로 열심히 하도록 규제완화만 해 주면 되지만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시장에서 제4차 산업혁명의 한 축이 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줄이고 장기실업을 유발하여 빈곤의 고착화와 중산층의 약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정부는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직업훈련을 강화하고 사회안전망도 확대해야 할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성공을 위해서는 시장과 정부의 역할 정립이 필요하다.

김은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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