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며, 그렇기에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주체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주체적 인간이란 무슨 의미인가? 주체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내 안에 중심이 세워졌음을 의미한다. 내 안에 중심이 섰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주체적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분별력과 세상의 시비를 가릴 수 있는 판단력이 있다. 우리가 토론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토론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우리에게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 중심을 세우고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남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다.

자신을 주체적 인간으로 세우기 위해 맨 먼저 할 일은 받아쓰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대학 1학년 학생들은 대부분 수업 시간에 교수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받아 적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암기 위주의 중고등학교 공부 습관이 몸에 밴 탓이다.

받아 적기만 하는 학생은 질문하지 않는다. 받아 적기는 교수의 말을 외우는 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도만 조금 달랐지 이런 모습은 대학의 고학년 학생들에게서도 발견된다.

받아 적기에 익숙한 사람에게서는 창조적인 생각이 나오기가 어렵다. 창조성은 자율성으로부터 만들어지며, 자율성은 자기중심을 세우는 것으로부터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 중심을 세우는 일은 받아쓰기 혹은 받아 적기가 아닌 글쓰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글쓰기는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성찰의 능력을 키워준다. 글쓰기에 의해서 정확성과 분석적인 엄밀함을 요구하는 감각이 생겨나고 발달한다. 글쓰기는 얽히고설킨 우리의 의식과 사고를 해방시켜 자아와 세상을 올바르게 직시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준다. 글쓰기를 통해 얻어진 사유의 경험치는 나의 참된 실력으로 내 안에 누적된다. 그 경험치가 쌓이면 쌓일수록 사유의 능력은 더욱 커진다. 공부의 단수가 올라가고 문제 해결 능력이 상승한다.

공부의 단수는 암기 위주의 받아 적기를 통해서는 향상될 수 없다. 대학에 들어오면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거의 쓸모가 없게 된다. 그것들은 대부분 암기 위주의 피상적인 수준에서 습득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오면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들은 거의 다 버리고 새로 배워야 한다. 이것은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들도 기업에 들어가면 거의 무용지물이어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이공계 쪽 지식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지식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배운 인문학적 지식을 가지고는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수 없다. 우리가 인문학적 지식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박사 수준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교육의 핵심 주제는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오늘날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는 더 이상 암기 위주의 받아 적는 방식으로는 키워질 수 없다. 학교 교육이 지식 전수가 아닌, 학생들의 공부하는 능력, 사유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쪽으로 방향을 맞추어야 한다.

대학 입시에서 각 학교가 시행하고 있는 논술 전형이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논술과 글쓰기는 전혀 다른 사안이다. 논술 전형은 없어져도 무방하나 글쓰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중고등학교 학교 교육의 근간은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

김창원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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