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획 STORY] '대한민국 노인보호 1등 공신' 정희남 인천시노인보호전문기관장


▲ 정희남 인천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이 인천시 남동구 서창동 학대피해노인 전용쉼터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윤상순기자/
2016년 기준 국내 60세 인구는 1천13만4천728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20%를 차지한다. 가장 최근 조사인 2014년 보건복지부의 노인 복지 실태 결과에 따르면 노인 64만 명이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노인 100중 6명꼴로 자녀나 배우자 등에게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받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UN은 2006년부터 매년 6월 15일을 ‘세계 노인 학대 인식의 날’로 정했다.우리 정부도 올해부터 이날을 ‘노인 학대 예방의 날’로 지정하고 노인보호 공적이 있는 대상자 7명에게 포상을 했다.

포상 가운데 대통령 표창보다 높은 최고 훈격인 국민포장을 수상한 인물이 있다.

정희남(46) 인천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이다.17개 지방자치단체의 노인보호전문기관 중 한 곳에서 근무하는 그가 국내 학대피해노인 복지의 최고 공적자로 선정됐다.

그를 만나기 위해 인천시 남동구 서창동 학대피해노인전용쉼터를 찾았다. 그는 앳된 얼굴에 소년같은 말씨와 보기 드문 맑은 눈을 가졌다.

▲ 정희남 인천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윤상순기자/
-훈격 포상을 축하한다.어떻게 수상하게 됐는지.

“처음에 주변에서 국무총리표창을 추천했는데 나 같은 사람이 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어요(웃음). 19년 동안 노인복지에 종사했지만 다른 복지사분들과 똑같거든요. 학대 받는 노인들을 어떻게 하면 빨리 찾아내 긴급 구조를 할 수 있는지,이 분들을 어떻게 모시고 와야 하는지,그리고 이후에는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실행했을 뿐인데 너무 과분한 수상에 아직도 얼떨떨해요.”

-그래도 남들과 다른 차별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먼저 법률이나 사법기관과 공조했어요.경찰이나 범죄피해지원센터로 신고가 접수가 되면 우리 기관에서 학대 여부를 판단합니다.응급사례일 경우 현장 조사를 나가 피해노인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죠.피해노인들은 성인이기 때문에 그 분들의 욕구를 존중합니다.격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전용쉼터나 전문양로시설로 입소시켜드리고 피해가 경미할 경우에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합니다.체계를 갖추기 위해서 유관기관들과 끊임없이 협조했습니다.선도적으로 조금이나마 잘 됐다는 평가를 받아 그 대표로 제가 수상을 한 것 같습니다.”

-처음 복지사의 길에 접어든 계기가 있는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목사님이셨어요.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는 분이셔서 은퇴하실 때까지 자전거를 타셨고 남을 챙기는 게 삶인 분이셨습니다.무료 급식은 기본이고 교회에 가면 노숙하시는 어르신들이 항상 오셨어요.정작 우리가족은 창고에 살면서 매번 퍼주기만 하니까 집안 살림도 어려웠죠.친구들은 그런 사정도 모르고 ‘목사님 아들’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공공연히 따돌렸죠.어린 나이에 절대 사회복지는 쳐다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경영학과를 선망했었죠.그런데 피는 못 속이나 봐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인지.

“대학교 때 노인복지관에 봉사를 간 적이 있었어요.거동이 어려우신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갑자기 할아버지 한 분이 할머니 손을 잡고 도망치듯 뛰어가시더라고요.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났어요.그 때 할머니,할아버지들께 청소년들한테 하던 퀴즈와 박수치기 등 레크리에이션을 해봤는데 아이들처럼 좋아하시더라고요.제가 갖고 있던 선입견들이 무너진 거죠.그 이후에는 복지사라는 직업이 배고픔보다는 행복을 주는 일이라는 걸 깨우쳤어요.”

▲ 정희남 인천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이 인천시 남동구 서창동 학대피해노인 전용쉼터 옥상에 마련된 텃밭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 텃밭은 기관 직원들과 쉼터 내 학대노인들이 직접 가꾸고 있다. 윤상순기자/

-기억에 남는 어르신들도 많을 텐데.

“할머니 한 분이 거주하시던 집에서 월세가 밀려 내쫓기신 적이 있었어요.동네 주민이 신고를 해서 가봤더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짐 사이에서 비닐을 덮고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계시더라고요.급한 대로 센터로 가자고 하니까 지방에서 아들이 올라온다고 꼼짝도 안하시는 겁니다.수소문 끝에 아드님께 전화했더니 알아서 모시라고하고 통화를 끊더라고요.할 수 없이 단기보호 차원으로 저희 집으로 모시고 왔어요.그 때 신혼이었는데 아내가 잘 모셔왔다고 오히려 제 어깨를 토닥여주더라고요.할머님이 고집 부리시는 통에 속상했는데 아내의 말 한 마디에 모든 게 치유된 듯 했어요.할머니께도 정작 필요한 건 아드님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며칠 뒤 다행히 아드님이 올라오셔서 정부 지원을 받아 조그마한 월세집을 장만할 수 있도록 도와드렸어요.”

-학대 받는 노인들은 어디로 가는가.

“전국 16개 시·도에서 학대 노인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학대 사례가 긴급할 경우 지역 내 쉼터로 이송합니다.지금 인천 지역 쉼터에는 4명의 어르신들이 생활하고 계세요.이 분들 가운데 할아버지는 치매가 있으셔서 혼자 계시면 방화를 저지르세요.이 때문에 위험이 될까봐 쉼터로 모셔왔고요.나머지 할머니 3명은 배우자나 자녀분들로부터 학대를 받은 분들이세요.할머니 한 분은 할아버지가 심각한 의처증으로 매번 살해 위협까지 당하셨어요.노인 분들은 학대를 받아도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시는 경우가 많아요.정말 난감하고 보내드리면 안 되는데 성인이라 마음대로 막을 수가 없어요.이럴 때는 학대 가해자를 대상으로 정신 치료를 병행해드려요.쉼터는 최대 3개월까지만 거주하실 수 있습니다.이후에는 가정이나 요양원으로 가셔야하는데 대부분 요양원으로 가길 싫어하세요.가정으로 돌아가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예전에는 부양자녀가 있거나 일정 재산이 등록돼 있으면 기초수급으로 지정이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노인복지법이 개정돼 수급자로 지정이 될 수 있습니다.3개월 동안 어르신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을 통해 수급자 등록 등을 대신 처리해드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어떤 종류의 노인학대가 많은지.

“과거에는 신체적인 학대가 많았는데 요새는 정신적 학대와 특히 방임 학대가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정신적인 학대는 자식이나 며느리,사위 등으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듣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육체적인 고통보다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죠.최근에는 방임 학대가 늘고 있습니다.자녀들과 함께 거주하지만 속된 말로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거죠.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해 건강상의 심각한 문제가 오기도 합니다.장기간 방임되다가 버려지는 사례도 있습니다.”

-노인인권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은데.

“버려지는 노인들 사례에서 보듯이 정신적으로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우리가 나서 예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지난 2015년부터 인천노인생명희망센터를 부설 기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자살위험이 높은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노인우울척도를 검사하고 자살고위험군을 발굴하는 겁니다.2차로 심리상담센터를 연결해 어르신들의 사회활동과 자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또 노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노인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학생이나 어르신 등을 대상으로 약 500회 정도의 예방교육을 실시했습니다.노인 학대 사례를 발견할 경우 언제든지 신고할 수 있게 사전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죠.우리 기관에서는 24시간 노인학대 피해신고를 받고 있습니다.위험에 처한 어르신을 발견하면 바로 즉시 연락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학대라는 위험 요소가 제거되면 기관의 보호 조치도 끝나는 건가.

“네 맞습니다.보호전문기관이기 때문에 피해자 욕구가 만족되고 더 이상 학대로부터 불안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업무는 종결됩니다.피해자가 사망하는 경우나 타기관에 이관될 경우에도 저희 기관의 역할은 끝나는 거죠.하지만 제 성격상 한 번 인연을 맺은 어르신들하고 단절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럼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는지.

“오지랖이 넓어서 그러기도 해요.작년에는 학대받는 노인 피해자와 가해자 부부 4쌍을 제주도로 모시고 가서 리마인드웨딩을 시켜드렸어요.제주도는 신혼 여행지로 찾는 곳이기도 하잖아요.다시 출발한다는 의미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려드렸는데 너무들 좋아하시더라고요.사실 저희 직원들은 준비하느라고 꽤 고생했을 텐데 미안한 말이지만 앞으로 의미있는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요.”

-결국엔 아버지만큼 사회에 베푸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아버지께서는 작년 1월 1일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셨어요.살아계실 때는 지지리 궁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미워도 했어요.남들한테는 존경을 받았지만 자식들한테는 인색하다고 생각했거든요.그런데 저도 이 길에 접어든 이후 아버지께서 병상에서 처음으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내가 주일날 베풀고 아들이 평일에 사회복지를 해서 얼마나 행복한지 아느냐“고. 의식을 잃기 직전에 하시던 말이 제 가슴 한 편에 멍울처럼 남았어요.아버지께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면서 은퇴하셨던 그 모습처럼 저도 그렇게 베풀면서 늙어가고 싶어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40대에 직업을 바꿔라’라는 말이 있더라고요.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요.청소년들을 데리고 울어도 봤고 어르신들 똥도 밟아봤지만 이제는 가족이라는 하나의 세트를 치료해보고 싶어요.가족복지를 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상담실에 처박혀 말로만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싶어요.문화와 연극 등을 함께 즐기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보듬는 거죠. 가족들이 행복하면 사회 전체가 행복하다는 뻔 한 이론을 실현시키고 싶습니다.”

조현진기자/chj@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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