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때 묻고,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주장일 수 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개성과 적극적인 주장과 표현에 거침없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 방종이라는 단어를 꺼내 보는 것 자체가 색깔의심을 받을 수도 있겠다.

몇 주 전,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 경험한 일이다. 옆 테이블에 네다섯 살 쯤 되는 아이를 데려온 젊은 엄마와 그 엄마의 어머니쯤 되는 아주머니가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음식을 주문 후 수선스러운 아이 덕분에 귀와 시선이 옆 테이블로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요즘의 흔한 아이와 다를 바 없이 기본적인 예절이라고는 없는 행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에게 꼬박꼬박 존댓말로 이야기를 하는 아이 엄마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이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오늘 점심은 망쳤다 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이의 행동은 점점 도를 더하고 급기야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을 참을 수 없었는지 엄마의 뺨을 때리는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상황에서도 아이에게 존댓말을 하며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는 아이엄마와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아이엄마는 본인의 친정엄마인 할머니에게는 꼬박꼬박 반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넘어갔어야 하는데, 또 다시 발동한 오지랖으로 최대한 조심스럽고,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예의바른 표정과 음색으로 아이엄마에게 물었다. 왜 아이에게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면서 어른이신 할머니께는 반말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느냐고...

아이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는 상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란스럽게 한 것은 죄송한데, 아이가 그럴 수도 있고 남이야 아이를 어떻게 키우던 자유인데 그걸 왜 따지듯 하느냐... 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답 중에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있는 것은 내 아이에게 존댓말 하는 것은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기 때문이며 부모가 먼저 내 아이를 존중했을 때 남들도 내 아이를 존중해 줄 것 아니냐는 말이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의 아이엄마 표정보다 내 눈에 더 아프게 비집고 들어왔던 할머니의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표정이다.


그렇게 자유를 맘껏 누리며 자란 아이들이 넘쳐난다. 그 아이들이 트랜드라는 이름으로 여론을 조성하고 그 여론에 목을 매는 사회적 분위기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손가락 느린 어른들의 어리버리한 대응에 여지없이 쏟아지는 방사포격 같은 공격에 너덜너덜해지는 감정은 손 쓸 수 없는 자괴감이 만발함을 부정 할 수 없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편리해지고 빨라져도 인간이 가져야 하는 기본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배려와 예의다. 내 아이니까 눈감아준 하나의 행동이 내 아이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며 그것으로 인한 내 아이의 삶의 불편함을 안다면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하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한다. 부모가 되는 방법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아이를 사회의 일원으로 올바르게 키워내야 하는 책임과 의무도 포함되는 것이 제대로 된 부모가 되는 방법인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첫 번째 책임은 지금 막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나 같은 세대에게 있다. 베이비붐 세대에서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부모세대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과 관심과 물질적 풍요로움을 지원받아왔기 때문에 정작 자식들에게 삶의 가치에 대한 교육에 무관심했던 결과이기 때문이다.

유현덕 한국캘리그래피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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