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와 단 둘이 있게 된다면? 당신은 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역사 속의 인물들은 너무 쉽게 고정적인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특이한 인물을 제대로 인식한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반젤리스 영화 음악으로 기억되는 1492년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 영웅이다. 그러나 최근 뉴욕에서 콜럼버스 동상을 철거하라는 집회가 잇따른다고 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빚어진 부정적 영향과 그를 영웅시하는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는 일부의 주장이다. 동상은 120년 전에 만들어진, 뉴욕 맨해튼 콜럼버스 서클에 있는 높이 18미터 기둥위의 4미터짜리 거대한 콜럼버스 상이다.

지난 2012년 일본의 유명 설치미술가 타츠 니시(Tatzu Nishi)는 바로 이 콜럼버스 동상을 거대한 설치구조물로 둘러싸고, 소파와 테이블은 물론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팬트하우스 거실로 만들었다. 10억 원의 예산을 들여 2개월간 설치된 이 작품은, 처음 계획 단계에서부터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들이 콜럼버스에 대한 불손함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이래저래 콜럼버스 동상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던 셈이다. 하지만 반대 여론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콜럼버스 발견하기(Discovering Columbus)’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논란을 통해 작가의 예술적 상상력은 제대로 소개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역사 속의 콜럼버스를 사적인 공간에서 만나는 특별한 경험은 영웅이라는 상징성을 해체하는 일이기도하다. 두 가지 반대여론 모두가 이 역사적 상징성을 두고 다툼이 벌어졌다. 예술가의 짓궂은 농담과도 같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은 당황스러움과 함께 콜럼버스에게 한 발 더 다가서게 된다. 상징성이 부여되는 공공기념물이 공식적인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잃어버린 대신, 지극히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상황이 전복된 것이다. 상상력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예견할 수 없는 반전과 융합에서 나옴을 새삼 확인시킨다.

고 수기모토(Go Sugimoto)
톰 포웰(Tom Powel)

작가는 영국 리버풀의 빅토리아 여왕 동상, 스위스 바젤의 14세기 대성당의 지붕 위. 싱가포르 상징인 머라이언 분수대 등을 럭셔리한 호텔방, 가난한 부엌과 같이 새로운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런 예기치 못한 새로운 공간의 설정은 특정한 장소의 환경을 낯설게 하고 상징이라는 고착된 이미지를 벗어나게 만든다. 이런 경험은 공간이 달라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발견을 통해 우리들 스스로가 달라짐을 깨닳게도 한다. 역사는 발생한 사건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용하는 힘이라고 했다. 아마 오늘날에도 우리가 여전히 콜럼버스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이유가 그럴 것이다.

전승보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전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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