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청년 일자리 절벽’에 위태롭게 서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9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은 9.2%, 체감 실업률은 21.5%에 달한다. 누군가가 수천대 일의 경쟁률 앞에 절망할 때, 누군가는 활짝 열린 옆문으로 들어와 노력한 이들을 제치고 사회의 출발선 앞줄에 섰다.



최근 공공기관의 채용부정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야말로 ‘현대판 음서제’가 사회 곳곳에 만연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복마전에 구직자들은 분노를 넘어 깊은 상실을 느끼고 있다. 부정이 드러난 이상 승자에 대한 인정은 없다. 정당한 경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힘 없고 빽 없어 떨어졌다는 피해자와 그 가족의 분노가 자괴감으로 이어진다면 대한민국은 불신의 늪에 빠질 것이 자명하다. 이런 사회에서 무슨 수로 국민 통합과 화합을 이룰 수 있겠는가.



필자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채용부정에 반드시 철퇴를 가하겠다는 각오로 국정감사에 임했다. 필자의 촉구로 이뤄진 감사원, 산업부 감사 등을 분석한 결과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28개 기관 중 25개 기관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채용부정과 제도 부실 운영으로 18개 기관에서 최소 805명의 합격자가 적발돼 국민적 지탄이 일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일명 ‘채용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대대적인 감사에 나섰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철저히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더불어 채용부정을 근절하고 뿌리 뽑기 위한 법적 장치 마련도 시급하다. 현행은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가 뒤늦게 세상에 드러나도 바로잡을 수 있는 수단이부재하다. 이미 합격자는 뒤바뀌었고 이들을 퇴출할 경우 부당해고에 해당할 수 있어, 합격을 취소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부정합격자에 대한 조치 및 억울한 탈락자들에 대한 구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최근 필자는 국민의당·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4당 의원 총 37명의 도움으로 ‘공공기관 채용부정 근절법(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공공기관의 장 또는 임직원의 명단 공개와 부정행위로 인하여 채용시험에합격하거나 승진 또는 임용된 사람의 합격, 승진 또는 임용을 취소하는 규정 등을 구체화하여 명시했다. 최근 있었던 예결위 종합정책질의에서 이낙연 총리도 “정부도 최대한 협조하겠다. 아주 좋은 법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힌 만큼, 이번 정기국회 내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고위공직자를 비롯한 청탁자들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잘 부탁한다”는 한 마디의 말이 한 사람의 삶을 짓밟고, 청년들의 꿈을 빼앗고, 사회의 희망을 앗아간다는 무거운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 기관장 및 인사담당자도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권력과 압력 앞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물론 우리 사회도 이들이 부당한 청탁 앞에 ‘고개 숙인 가담자’가 아닌 ‘당당한 고발자’가 될 수 있도록 조직 내에 익명 ‘채용 청탁 신고제’ 등을 대안으로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도 깊게 썩은 뿌리를 뽑아내지 못 한다면 청년들의 꿈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사필귀정’과 ‘일벌백계’다.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잃어버린 상식을 회복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만 불신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부정과 반칙이 능력과 노력을 짓밟는 세상을 끝장낼 수 있다.


이찬열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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