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오래전에 곤혹스러운 법률자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어느 공직 조직의 장이 하급자 팀장에게 업무지시를 내렸는데 그 팀장은 상급자의 업무 지시 내용이 부당하다면서 이를 거절하고 있으니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사안의 내용은 이렇다. 급식을 공급하는 업체와 그 급식을 배송하는 업체가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배송업체와의 계약이 만료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배송업체를 선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종래 급식공급업체는 배송업체와 호흡이 맞지 않아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겨서 급식 공급업체가 배송업체를 선정하거나 동시에 운영해야 한다고 피력해온 마당에 마침 계약기간이 만료되었던 것이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상사는 상급기관과 감사원에 배송업체 선정을 신속히 하여야 한다는 점의 품신을 올려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사이 배송 업무를 중단하면 급식 중단이라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에 응급조치로 급식공급업체와 소통이 되는 배송업체가 일할 수 있도록 업무지시 하였다. 그러나, 실무자는 위 업무지시를 이행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 관계 법령에 따르면, 배송업체 선정은 긴급하 경우가 아니면 입찰방식에 의하여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담당공무원의 직무명령거부는 적법한 것인가가 질의의 핵심이었다. 이에 위 문제와 관련된 기존 법령과 판례를 살펴보게 되었다.



국가공무원법 제57조는 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대한 복종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한편, 공직자 행동강령 운영지침 제8조는‘공직자는 상급자가 공정한 직무수행을 현저하게 해치는 지시를 한 경우에는 자신의 인적사항, 지시내용, 지시에 따르지 아니하는 사유 등을 기재한 별지 제1호 서식 또는 전자우편 등의 방법으로 상급자에게 소명하거나 서식 또는 전자우편 등의 방법으로 행동강령 책임관과 상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판례를 보면, 1999년 대법원은‘공무원이 그 직무를 수행함에 즈음하여 상관은 하관에 대하여 범죄행위 등 위법한 행위를 하도록 명령할 직권이 없는 것이며, 또한 하관은 소속 상관의 적법한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있으나 그 명령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특정후보에 대하여 반대하는 여론을 조정할 목적으로 확인 되지도 않은 허위의 사실을 담은 책자를 발간·배포하거나 기사를 게재하라는 것과 같이 명백히 위법 내지 불법한 명령인 때에는 이는 벌써 직무상의 지시명령이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야 할 위무가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특히 검찰 업무에 있어서, 2004. 1. 20.개정 검찰청 법은 제7조 제1항은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고 하면서도, 제2항에서 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제1항의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 여부에 대하여 이견이 있을 때에는 이의를 제기 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종래의 검사 동일체의 원칙을 수정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2014년 대법원은 검사가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상급자의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에 대하여 이의한 상황에서 검찰청의 장이 아닌 상급자가 그 이의를 제기한 검사를 직무에서 배제하는 직무이전명령을 하기 위해서는 검찰청의 장으로부터 검사직무 이전에 관한 권한을 구체적·개별적으로 위임받거나 그러한 상황에서의 검사직무의 이전에 관하여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한 위임규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상급자의 직무이전명령을 따르지 않은 검사에게 내려진 징계가 위법하다고 판결하였다.



필자는 이상과 같은 내용들을 참작하여 위 법률자문에 답하였던 기억이 있다. 최근 국정농단 사건에서 드러난 상당 수 법적 일탈이 상사의 위법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예컨대, 상급자 지시를 받고 정부고위인사에게 특수 활동비를 전한 정보부처의 직원, 진보성향 문화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해당 부처 실무자, 상사 지시로 배우 문성근씨와 김여진씨의 합성 알몸 사진을 만든 뒤 유포한 국가정보원 직원 등의 사건이 그것이다. 역으로 노태강 차관처럼 상부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공무원이 좌천당하거나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정부가 최근 이와 같은 문제점을 입법적으로 명시하기 위하여 위법·부당한 상관지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무원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대통령이‘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봉사자이지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다.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던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아무튼, 위 국가공무원법 개정을 계기로 하여 소신 있는 공무원이 보호되고 정의로운 공직사회가 구현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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