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이 1533년에 그린 ‘대사들’은 인물의 사실묘사, 다양한 오브제의 실재감 있는 묘사로 유명하다. 480여 년전 그림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사실적이다. 이 그림은 홀바인이 헨리 8세의 궁정화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그림으로 제작 시기, 제작 동기 등과 관련한 많은 사연을 지녔다. 홀바인이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왔을 때 헨리 8세는 로마 교황청과 결별하고, 군주 중심의 국교를 창시하겠다고 선언한 시기였다. 이때 영국과 로마의 종교 갈등을 막기 위해 프랑수아 1세의 특명을 받고 영국으로 파견된 인물이 그림 속 ‘대사들’이다. 댕트빌(왼쪽)은 당시 29세의 전도유망한 젊은 외교관이었다. 댕트빌은 자신의 화려한 경력과 야망을 담은 초상화를 그려 가문 소유의 성(城)에 걸어두고자 홀바인에게 의뢰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대사들’이다. 베레모, 흰 담비 털로 안감을 댄 망토, 가슴에 단 왕실 훈장, 29세라고 라틴어로 쓰인 단검은 당시 댕트빌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낸다. 화면 오른쪽의 인물 역시 당대 지성인을 대표한다. 댕트빌의 지인인 조르주 드 셀브로 18세에 주교가 된 종교계의 신성(新星)이다.

▲ 한스 홀바인‘대사들’ 1533년, 나무패널에 유화, 207×209cm,영국 런던 국립미술관 소장

이 그림의 재미와 가치는 두 인물 사이에 그려진 이단의 테이블에 놓인 다양한 오브제에 담긴 상징의미와 상호 관계를 읽어내는 것에 있다. 상단이 화학, 수학, 천문, 항해 등 과학의 발전을 통한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나타냈다면, 음악악기로 채워진 하단은 독일의 종교개혁으로 촉발된 종교 갈등이 영국과 로마교황청의 결별처럼 유럽의 정치적 질서를 위협하고 있음을 암시(현악기 류트의 줄이 끊김)한다.

대사들이 그려진 지 480여 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가 이 그림에 주목할 만한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다. 화면하단의 왜상(歪像, anamorphosis)기법으로 표현한 두개골 형상에 담긴 의미다. 바니타스(vanitas)의 상징으로 ‘죽음을 기억하라(momento mori)’라는 경고는 세속적 허영, 인간적 욕망에 사로잡힌 현대인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적절하다.

종교개혁 500년을 맞이한 올해, 최근 종교계에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진정 자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대사들 왼쪽 위 커튼 뒤로 살짝 보이는 은제 십자가처럼 진실과 참된 교리가 더는 거짓과 왜곡으로 가려지지 않도록 경계해야한다. 이성적 판단과 도덕적 선택은 우리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중요한 자세와 태도이다.

변종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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