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9일전이다. 1997년 11월 21일 오후 10시 광화문 정부1청사. 당시 취임한지 사흘 밖에 안된 임창렬 부총리 겸 기획재정원장관은 “국제통화기금(IMF)에 200억 달러 이상의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고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12월 3일 임창렬 부총리와 이경식 한은 총재는 캉드쉬(Michael Camdessus) IMF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구제금융을 위한 정책이행각서에 서명했다. 경제주권이 IMF로 넘어가 한국이 제2의 경술국치를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IMF 경제위기를 초래한 것은 인재(人災)였다.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돌파를 선전하고 보란 듯이 OECD에 가입하고 싶었던 김영삼 정부의 과시욕구 때문에, 유동성 위기를 불러올 투기적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장치도 없이 OECD 가입조건인 자본시장 자유화를 대책 없이 수용한 게 기폭제로 작용했다.

실제로 1997년에 종합금융회사 중심으로 1년 이내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외채를 빌려 국내 기업에 7~8년짜리 장기자금을 대출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외화자금을 끌어올 수 없게 되고 환율이 급등하자 해외부채가 늘어난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1997년 12월 20일 현재 대외부채 1천530억 달러 중 절반 이상(52.4%)이 단기차입금이었다. 그 결과 대우, 쌍용, 해태, 진로 등 내로라 하는 재벌그룹이 몰락했다. 30대 그룹 중 16개가 퇴출됐고, 1998년6월에는 동화은행, 동남은행, 대동은행, 경기은행, 충청은행 등이 사라졌다. 기업부도와 실업이 양산됐다. 1998년에 자살률이 50%나 상승한 가운데 GDP 성장률은 -6.7%를 기록했다.

김대중 정부는 수십조 원의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은행을 비롯한 보험사 등 비은행권에 투입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외국 자본을 많이 들여올수록 좋다”며 신자유주의정책을 표명하고 대우자동차 해외매각을 적극 추진했다. 공적자금은 1997년 이후 2006년까지 168조 3천억 원에 이르렀다. 그 결과 2001년 8월 IMF에서 빌린 195억 달러를 전액 상환하면서 한국은 4년 만에 IMF 관리체제를 벗어나게 됐다. 이 과정에서 243만 명이 165톤(t)의 금을 내놔 22억 달러 규모의 외화벌이라는 기록을 세워 다시 일어서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

IMF는 최근 가계부채로 인한 과도한 부채로 버블붕괴위험이 큰 국가 톱5를 발표했다. 불행히도 캐나다, 호주, 브라질, 중국, 한국 순서로 5위에 랭크됐다. 조선일보가 IMF 20주년을 맞아 한국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일반국민 800명과 경제전문가 4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68%는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향후 5년내 발생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경제위기 뇌관이 될 수 있는 취약한 분야로 ‘주력산업의 몰락(20.6%)’과 가계부채(17.5%)‘, ’낮은 노동생산성 및 노사관계‘(16.5%)등을 꼽았다.

한국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가 3분기에 1400조원을 넘어섰다. 2015년 1200조원, 2016년 1300조원 돌파에 이어 1년여 만에 다시 100조원 넘게 불어난 것이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어서다.우리나라 인구(약 5170만명) 1인당 평균 2740만여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가계부채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자영업자 대출이다. 총가계부채의 60% 이상이 자영업자 대출이고, 신용대출 가운데 상당수가 생계형 대출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근본적인 문제는 부동산대출로 인한 부채증가도 중요하지만 더욱 먼저 해법을 찾아야하는 것은 바로 생계형 대출, 즉 자영업자 대출이다.

부채의 질이 나빠진 것도 문제다.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이 3분기에 7조원 늘면서 2006년 통계 집계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또 가계대출 가운데 저축은행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과 카드사 등 기타 금융기관 대출이 절반 이상(51.7%)을 차지한다. 이들 대출 이자는 은행보다 훨씬 크다. 부채는 가계의 지갑을 닫게 하고 장기적으로 금융안정을 훼손할 수 있는 위험요인이다. 빚이 많아지면 가계는 소비를 줄인다. 이미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6월 말 현재 153.3%로 높은 수준이다. 더구나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단순 계산해 1400조원에서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이자는 14조원이 늘어나는 것이다. 가장 큰 폭탄인 자영업자 대출은 내수경기의 진작이 없이는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정부의 모든 정책수단을 좋은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는 소득주도 성장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하지만 아직은 미지수다. 내수진작을 위한 묘책이 시급하다.

표명구 경제부장/고양·김포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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