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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연의 풍수기행] 진주 지수초등학교와 승산마을… 경제계 거물 꿈 키운 요람

정경연 2018년 01월 10일 수요일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 위치한 지수초등학교는 우리나라 4대 재벌 창업주들이 다닌 학교로 유명하다. 삼성그룹 호암 이병철(1910~1987), LG그룹 연암 구인회(1907~1969), 효성그룹 만우 조홍제(1906~1984), GS그룹 허정구(1911~1999) 회장이다. 이중 구인회와 허정구는 승산마을 출신이다. 반면에 이병철은 의령, 조홍제는 함안 출신으로 당시 신식교육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어서 이곳으로 유학을 온 것이다. 이들은 나이는 다르지만 학교는 비슷한 시기에 다녔다. 그 인연으로 나중에 사업도 같이 하게 되는데 이병철·구인회·허정구 세 별이 모였다하여 회사 이름을 삼성(三星)으로 지었다고 한다.

지수초등학교는 1921년 개교하여 1973년에는 학생수가 647명(12학급)에 이르렀다. 그러나 농촌인구 감소로 점점 줄어 1998년에는 53명(3학급)으로 학교 존속이 어렵게 되었다. 그러자 총동창회에서 학생 모집을 위하여 외지에서 전·입학하는 학생에게 1인당 30만원씩의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당시 총동창회장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14회 졸업)의 공이 컸다. 그러나 재벌회장의 지원에도 학생수는 증가하지 않았다. 결국 2009년 인근의 송정초등학교와 통합되어 학생수가 조금 더 많은 송정으로 옮겼다. 다만 학교명은 지수초등학교를 사용하기로 했다. 현재 승산리의 지수초등학교는 비어 있는데 이병철과 구인회가 함께 심었다는 소나무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승산리는 김해허씨들이 대대로 터를 이루고 살아왔던 마을이다. 조선 초기인 1400년대 11세조인 허문손이 지수에 입향하였다. 재물이 모인다는 부자 터를 찾아 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후손 중에 만석꾼, 오천석꾼, 천석꾼 등 부자가 부지기수로 나왔다. 구한말에 허씨들의 재산을 모두 합하면 3만석이 넘었다고 한다. 그중에 만석꾼의 부자가 지신정(止愼亭) 허준(1844~1932)이고, 그 아들이 효주 허만정(1897~1952)이다. 이들은 만석꾼답게 사회에 도덕적 의무를 다하였다. 허준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200평씩의 땅을 나누어주었는데 공짜로 주지 않았다. 마을 앞 방어산에서 돌을 가져오는 사람에게만 주었다, ‘무노동 무입금’의 실천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농민들의 자존심을 헤아리는 마음이었다고 본다. 이렇게 가져온 돌은 마을 길 닦고 담장 쌓는데 쓰였고 일부는 아직도 남아 있다.

허만정은 안희제와 함께 백산상회를 세워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조달하였고, 진주에 일신여고(지금의 진주여고)를 세워 여성교육에도 앞장섰다. 1923년 진주에서 백정들이 신분차별철폐운동을 벌일 때 이를 지원하기도 했다. 해방 후 좌우익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중간에서 서로를 설득해 살상이 없도록 하였다. 이 일은 6.25때 빨치산들이 지수면을 헤치지 않는 계기가 되었다. 그에게는 허정구·허학구·허준구·허신구·허완구·허승효·허동수·허승표·허승조 등 8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 허정구는 이병철이 삼성을 세울 때 같이 참여하여 초대 삼성물산 사장을 지냈다.

해방 후 6촌지간인 허만식의 사위 구인회가 사업을 한다고 하자 그의 사업수완을 알아보고 자금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때 3남 허준구를 경영에 참여시켰는데 허준구의 아들이 현재 GS그룹 허창수 회장이다. 허만종은 자손들에게 “허씨는 재물이 성하고, 구씨는 학문이 성하여 벼슬하는 사람이 많으니, 경영은 구씨 집안이 알아서 하고 너희는 돕는 일에만 충실 하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구씨와 허씨는 서로를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대하며 불협화음 없이 잘 지낼 수가 있었다.

능성구씨들이 승산리에 입향한 것은 구인회의 7대조인 구반이 조선 숙종 36년(1710) 허씨 집안에 장가를 오면서부터다. 그의 선조들은 대대로 경기도 양주에서 세거하는 문인 집안이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구반의 부친인 구문유가 고령현감으로 있으면서 과거급제 동기인 김해부사를 만나러 가는 길에 허씨 집안에서 하룻밤 유숙하게 되었다. 주인과 손님이 술잔을 나누다 말이 통하자 서로 사돈 맺기를 약조하였다. 이때부터 구씨와 허씨는 대대로 겹사돈을 맺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능성구씨들 역시 승산마을에 터를 잡은 후 크게 번창하였다. 구인회의 조부 구연호는 문과급제하여 홍문관 교리와 사간원 정언을 지냈다. 구인회는 허만정과 동업하여 락희(樂喜, Lucky)주식회사를 설립하며 오늘날의 LG그룹 모태가 되었다. 이처럼 오랫동안 허씨와 구씨 모두가 번창한 것은 승산마을의 풍수와 관련이 있다. 승산마을의 풍수는 다음주에 살펴본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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