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객관적이기 어렵다. 치열하게 논쟁한다고 해서 자신의 모습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수 천 년 동안 같은 주제와 질문에 대해 되씹는 것이 인문학이다. 오죽하면 화이트헤드는 ‘2500년 서구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고 까지 말했을까. 하지만 나이들 수록 재미나는 것이 인문학이다. 수많은 인간들을 겪어오면서 비로소 이해가 되고 실감이 나는 탓일까.

반면 자연과학은 기본적으로 이미 검증된 문제에 대해 다시 고민하지 않는다. 비가역적으로 진보한다. 과학혁명 이후 자연과학은 급속히 발전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갈수록 이해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수십 년 전에는 취미로 라디오를 만들거나 고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 그런 걸 하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자동차 수리센터에 차를 가져다 주어도 컴퓨터가 진단하고 부품을 교체할지언정 수리공조차도 직접 만들거나 고치지는 않는다. 나이들 수록 과학기술은 더욱 골치 아픈 존재다.

과학기술에 의해 바뀌는 것이 편의 시설이나 기구만이라면 그나마 괜찮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해 직업이 바뀌고 교육이 바뀌며 세상을 보는 가치관이 바뀐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거의 모든 문제들은 자연에 대한 이해와 결부되어 있다. 특히 인간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는 자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다. 자신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고민이나 논쟁보다는 먼저 거울을 보는 것이 옳다.

오늘날 ‘통신비’는 기본 지출 항목이다. 부모 세대가 젊었을 적에는 없었던 것이다. 나날이 쏟아져 나오는 상품들 속에서 자라난 젊은이들에게는 기성세대보다 돈만 있으면 소비할 것들이 훨씬 많다. 세상에 없는 게 아니라 바로 옆에 있지만 돈이 없어서 살 수 없는 것이다. 기본적인 수준만을 충족하려고 해도 기성세대가 경험한 것보다 엄혹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가족을 꾸려 남의 인생까지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미래를 설계하며 살려니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해 신경 써야 한다. 굳이 카르페 디엠(Carpe diem)까지 끌어다 들먹이지 않더라도 혼자만의 세계에서 소소한 만족과 행복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난다. 지금은 그것마저도 상품화의 대상이다.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임신이나 출산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 자연스레 분비되는 성호르몬의 일종이다. 이 호르몬은 뇌에서 합성되어 역시 뇌 속에 저장되었다가 분비되는 물질이다. 아기를 낳을 때 자궁의 진통을 유발하고 분만이 쉽게 이루어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아빠보다 엄마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은 이상하지 않다. 홀로 지내는 사람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으로부터 더 많이 분비된다는 점도 이해가 된다.

연구 보고에 의하면 옥시토신은 자제력을 높여주어 충동적인 행동을 제어해준다고 한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해주며 서로 믿고 의지하고 안정감을 느끼도록 해줌으로써 사회성을 강화해준다. 배우자 혹은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풍부히 분비된다. 서로 지그시 눈을 맞추면 분비가 늘어나지만 상대에게 말을 걸면 도리어 줄어든다. 다른 호르몬들과 달리 관계가 지속될수록 더 수치가 상승하기 쉬운 선순환을 따른다.

옥시토신은 생체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아미노산 몇 개의 조합에 불과한 작은 분자이므로 현재의 화학 수준으로도 충분히 합성할 수 있고 원한다면 구매할 수도 있다. 이런 단순하고 작은 물질이 우리의 내밀한 감정과 이토록 깊은 관계가 있다니!

혹자는 이런 범상치 않은 물질을 어떻게 상품화할까 머리를 쓸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닌 것 같다. 옥시토신은 하나의 물질에 불과하지만 왜 그것이 존재하는지를 생각해보자. 철학적 함의가 느껴지지 않는가. 옥시토신으로부터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고양하는데 활용할지 영감을 얻어야 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영혼 없이 돈만 추구하는 정책은 영혼 없이 돈만 추구하는 사람들을 재생산한다. 경제든 문화든 교육이든 거의 모든 문제들의 기저에 보편적으로 똬리를 튼 구성원들의 소외... ‘걱정 말아요’를 따라 부르며 위안을 얻었던 우리들에게 옥시토신은 자연이 던져주는 힌트가 아닐까? 우리가 속해 살아가는 사회를 근원적으로 더 나은 사회로 만들려면 옥시토신과 같은 정책과 문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 인문의 융합적 해결의 실마리다.

정택동 서울대 교수, 융기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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