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오랫동안 보수와 진보의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의 내용과 그에 따른 행동양식은 각양각색이어서 정설은 없는 것 같다. 그동안의 신문·TV 등의 보도와 몇몇 인사들의 토론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먼저 진보주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요약해 보면, 대기업의 독과점 폐해의 적극적 시정,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 사회보장·복리정책의 확대, 정경유착의 확실한 단절, 일정한 기관의 정치 간섭 등을 척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개혁·개선, 부정척결, 사회보장의 확대에서 적극적 추진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외에도 또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을 들 수 있으나, 여기서는 지면관계로 생략한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것도 매우 다양하나 그들은 법적안정성의 중시, 창의력·근면적 노력을 가진 자의 우대, 일부비리를 관행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 같다. 보수주의가 주는 국어적 뜻은 급진적 개혁을 반대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한 때 어느 정치인의 입에서 사람들을 보수주의자냐, 진보주의자냐 로 구분할 때 자기를 진보주의자로 자처하는 보도를 한 것을 본 일이 있다. 평소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과 부의 공평한 분배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인사이다. 이에 대한 상반된 입장으로 보수주의를 든다면, 위의 사회정의를 위한 두 가지 사항에 대하여 경시 또는 도외시하는 입장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보수주의자 라고 자저하는 자도 “개혁적 보수” 또는 “진보적 보수”, “안정적 보수” 등을 내세우는 자가 많고 보면,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나 국가·사회의 병폐를 개혁하여야 한다는 입장으로서는 같다고 본다. 다만 진보주의자들은 보다 과감한 개혁, 적극적 개혁과 사회보장제도의 획기적 확대를 주장하고, 평등의 실현 입장에서 고소득기업·고소득자의 증세를 주장하나, 보수주의자들은 법적안정성의 측면을 강조하여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것 같다. 이와 같이 볼 때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툭하면 보수의 집결을 외치는 자들이 그동안 사회에서 갑(甲)의 지위를 누린 자들 내지 기득권자들을 자기들의 정치적 지지자들로 이끌어 들이기 위한 정치논리는 아닌지 의심을 갖게 한다. 보수주의 주장을 이렇게 해석하면 이는 확실히 진보주의자들과 대립하는 것이다. 이른바 보수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자를 더 많이 확보하고, 단결시키기 위하여 진보주의자 내지 적극적 개혁파를 과거 1789년의 프랑스 혁명, 1900년대 초의 러시아 혁명주의자와 비슷한 사상을 가진 급진세력으로 몰고 있는 것, 심지어 좌파와 연결시키려는 것은 반 정의적 세력으로 평가한다면 내가 논리의 비약을 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일각에서 적폐청산을 보복적 처사로 접근하고 있음을 비판하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특정기관의 정치개입의 수사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개혁의 박차가 대다수의 정치세력의 반감을 초래해서는 그것이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최근 일련의 사태조사는 통치권차원 이상의 실정법위반의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과 일부 신문에서 청와대비서진의 구성이 과거 운동권에 몸담았던 인사들이 다수라고 비판하는 것은 과녁을 한참 빗나간 비판이라고 본다. 그들은 자기 일신의 이익을 버리고 사회개혁을 부르짖던 인사들이고 보면, 그들의 가치관, 정의관은 존중해야 한다. 다만 경계할 것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에 기울어진 개혁시도는 저항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의 뱃속의 변을 모두 제거하는 것과 같은 개혁은 실패한다는 것을 세계역사 속에서 볼 수 있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합리적 한계 설정이 필요하고, 민주적 국민설득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지금 보수 세력의 목소리는 정권을 잃은 구세력의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제스처라고 인식되고 있으나, 그에 반하는 치밀한 논리를 개발하여 대응하지 않으면 개혁의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많다. 온 국민이 사회연대의식과 사해동포(四海同胞)적 가치관을 갖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송희성 前수원대법대학장, 행정대학원장, 논설위원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