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2년(영조 38) 윤5월 14일 정오, 갑자기 까치떼가 무수히 나타나 창경궁 경춘전을 에워싸고 울기 시작했다. 괴이한 일이었다. 경춘전안에 있던 혜경궁 홍씨는 아들이 있는 환경전으로 뛰어갔다. 분명 조정에 불길한 일이 있을 것 같아 아들인 왕세손 정조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당부했다. 왕세자빈인 혜경궁 홍씨는 시아버지인 국왕 영조가 자신의 남편인 사도세자에게 죽음을 강요할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오후 1시가 지나자 시아버지 영조가 휘령전으로 행차한다는 소식이 혜경궁에게 전해졌다. 휘령전은 5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 정성왕후의 위패가 봉안된 혼전(魂殿)이었다. 평소 사이도 좋지 않았던 왕비의 위패가 있는 전각까지 영조가 직접 찾아갔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오후 3시가 지나 사도세자는 아내인 혜경궁에게 창경궁 덕성합(德成閤)으로 으로 오라고 했다. 이곳은 사도세자가 최근 머물던 곳이었다. 혜경궁이 덕성합으로 들어갔을 때 사도세자는 고개를 숙인채 깊이 생각하며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사도세자의 안색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그는 아내인 혜경궁을 보자마자 “아무래도 괴이하니 자네는 잘 살게 하겠네. 그 뜻들이 무서우이”라고 했다. 아마도 아버지에 의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사실 사도세자는 13년전 대리청정 이후 줄곧 아버지 영조로부터 미움을 받아왔다. 아버지의 뜻과 달리 경전(經典) 학습을 소홀히 했고, 아버지를 지지하는 노론과는 적대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더구나 기후 이상으로 농작물이 자라지 못해 흉년이 지속되는 어려운 상황에서 북벌(北伐)을 부르짖으며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영조와 심각한 대립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특히 사도세자가 조선의 국왕이 되었을 때 자신들이 배척될 것이라 생각한 노론은 영조에게 사도세자의 비행을 들먹이며 부자 관계를 악화시켰다. 그러는 와중에 왕실과 민간에서는 사도세자가 경희궁으로 쳐들어가 아버지 영조를 죽이려 했다는 소문이 펴져 나갔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이고, 손자인 정조로 하여금 장차 자신의 왕위를 잇게 하고자 한 것이다.

영조는 자신의 첫 번째 왕비인 정성왕후의 위패가 있는 휘령전으로 가서 세자를 죽이겠다는 무언의 이야기를 한 후 세자를 휘령전으로 오라고 명령했다. 이에 사도세자는 아버지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자기 대신 아내인 혜경궁과 아들인 정조를 살려달라고 할 참이었다. 그것이 가장으로서 아내와 아들을 지키는 길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뜻과 달리 혜경궁은 남편을 살리고자 하는 적극적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사도세자는 휘령전으로 가서 아버지 영조의 명령에 따라 뒤주에 들어갔고, 8일 만에 죽고 말았다. 왕세자가 부왕에 의해 죽은 조선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사실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부부관계는 그리 좋은편이 아니었다. 사도세자가 절에서 비구니를 데려오기도 했고, 숙종의 왕비인 인원왕후를 모시는 궁녀 빙애를 데려와 살며 자식을 낳기도 했다. 그래서 혜경궁은 남편보다는 친정인 풍산 홍씨의 권력강화와 아들 정조의 국왕 계승에 더 주력한 것이다. 그래서 혜경궁은 여러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사도세자의 죽음을 방관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반면 혜경궁은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에는 아들 정조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 남편을 죽인 세력들이 11살 난 정조 또한 죽일지 몰라 3년간 아들을 자신의 곁에서 떼내어 영조가 있는 경희궁으로 보냈다. 이후 자신의 친척인 홍국영을 불러들여 정조를 보호하게 하고 마침내 아들을 조선의 22대 국왕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혜경궁은 남편을 포기하는 대신 아들을 살리는, 권력구도 앞에 냉철한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보였으며 다른 한편으론 부모에 대한 효성과 자식에 대한 자애로움을 지닌 조선의 가장 특별한 여인 중 한명이었다.

지난 17일 방영된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들 간의 TV 토론회에서 ‘혜경궁 김씨’ 트위터를 둘러싼 논란이 예상대로 뜨거웠다. 결론은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전망이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만큼 이 문제는 선거전 명백하게 가려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향후에는 후보자들이 지엽적인 문제보다 경기도와 관련된 주요 정책대결을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를 바란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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