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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농악의 흔적을 찾아서

임웅수 2018년 06월 13일 수요일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발전하는 도시화의 격랑 속에서 아름다운 전통의 풍습을 간직한 광명의 옛날 흔적을 상상하며 찾아 나섭니다.

희미하게라도 남아있는 광명 농악 역사의 흔적을 찾다가 오래도록 전해오는 전통의 문화를 하나, 둘 만나면 마치 명절에 고향집을 찾아가던 설레임과 같아 가슴에 찡하는 전율을 느낍니다.

어쩌면 이리도 같을까요.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고향집의 달라진 모습이 낯설어서 오히려 쓸쓸함을 느껴본 적 있습니다.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 빌딩들과 초가집 한 채 찾을 수 없는 아파트 숲 속에서 갈 길을 잃은 것 같은 쓸쓸함에 시린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이렇게 달라지고 변한 것이 광명만은 아닌데도 허전함은 메울 길이 없습니다.

그동안 하루의 일상 같이 농악을 천직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급격한 도시화로 달라진 모습에서 전통과 풍습을 찾는다는 것은 낯설고 어색하며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아직은 더 광명의 전통을 찾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성찰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지하철이나 식당이나 심지어 걸어다니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스마트폰이 점령한 대한민국입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어지간한 일은 모두 처리할 수 있는 스마트한 세상에서 저는 여전히 역사를 이야기하고, 전통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5천년을 살고 있는 우리 전통의 흔적을 찾으려 하는 것은 어머니가 그리워 고향을 찾아가는 자식의 심정과 같습니다. 내면 깊숙한 곳에 묻어둔 마음의 고향을 못잊어 그리워하는 나그네의 외로움과고 같으며, 우리는 하나이고 서로가 다르지 않은 따뜻한 이웃이었음을 확인하는 의미심장한 일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아름다운 전통문화의 깊은 속내를 꺼내 보면서 어렴풋한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광명시 전통 문화의 바탕은 전형적인 농경사회의 풍습과 살아왔던 과정이 하나도 빠짐없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일년 열 두달 24절기가 차곡하게 몸에 배이듯 스며있는 풍습이야말로 우리 조상의 삶의 방식이었고, 살아온 지혜의 흔적들입니다.

전통의 풍습은 하나하나의 소중한 가치와 나눔의 미학, 협동의 철학이 오롯하게 담겨있는 질그릇 항아리와 같습니다. 우리의 삶이 물질의 풍요 속에 급격히 달라진 환경이 됐지만, 옛날을 추억하고 떠올리며 재현하려고 하는 것은 정겨운 속삭임 같은 미래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악이 담고 있는 사회적 의미는 더욱 깊고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농악 내면에 있는 깊이를 성찰해 보길 권합니다.

옛날 마을 공동체를 이루었던 중심에는 ‘두레’라는 조상들의 놀라운 지혜가 삶의 철학으로 있었습니다.

두레 안에 이웃과 정겨움을 나누웠던 ‘소통’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두레와 함께 우리 민족에게는 서로 바쁜 일손을 거들어주던 ‘품앗이’가 있습니다. 노동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었던 두레 농악의 걸쭉한 가락과 소리가 그들을 춤추게 했습니다. 농악놀이의 백미라 하는 무등놀이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꼭대기에 올라갔던(새미) 노동력이 없는 어린 무동에게도 한 몫을 주었던 것은 현 시대 복지문화의 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농악이 갖고 있는 의미는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

1991년 처음 발굴한 광명농악은 2018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월대보름축제를 시작으로 하여 각 동 농악대회를 19회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광명농악대축제로 이름을 변경하여 12회째 매년 가을에 펼쳐 보이며 전통문화와 어우러지는 축제로 대동한마당을 만들어 광명시민은 물론 대한민국 누구나 신명난 화합의 한마당을 만드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여서 가능했던 두레와 농악이 오늘날 날줄과 씨줄이 되어 먼 훗날 아름다운 흔적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임웅수 경기도무형문화재 제20호 광명농악 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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