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으로 남과 북이 평화의 시대를 새롭게 열어가고 있는 가운데 파주시 임진각 인근 서부전선에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철모에서 평화의 상징인 데이지꽃이 피어나고 있다. 노민규기자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접경지역 마을주민들은 한껏 고무됐다. 주민들은 평화를 바라고 통일을 소망하면서 희망에 차있다. 딱딱하던 민통선 출입과정이 부드럽게 변했고, 최근 열린 한국전쟁 기념 마을행사에서는 전쟁 당시 불렀던 군가 대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북한땅이 코앞에 펼쳐져있는 민통선 태풍전망대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냉랭하던 남북관계가 화해무드로 접어들면서 긴장을 뒤로하고 평화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평화와 긴장이 공존하는 민통선

지난달 29일 오전 연천군 연천읍 ‘연천BIX(은통산업단지)’ 조성사업 부지에는 육군의 포(砲)를 실은 군용차량들이 북을 향해 서 있었다.

북쪽을 향해 한껏 고개를 치켜든 이 포들은 사실은 모형이다. 북의 위성이 남쪽을 정찰할 때 실제 포의 위치를 숨기기 위해 배치한 일종의 미끼다.

경기북부의 경제발전 축이라는 연천BIX 사업부지 표지판과 북을 위협하는 위장 포들이 함께 있는 풍경은 평화의 바람과 여전한 긴장이 공존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한참을 달려 북한이 바로 보이는 민통선 태풍전망대에 도착했다.

출입을 통제하는 장병이 신분증을 요구했고, 방문증을 발급 받은 뒤 블랙박스를 가리는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출입이 허가됐다.

과거에는 이같은 절차가 복잡했지만 1990년대부터 간소화 됐다고 한다. 사전에 신고해야하는 불편함이 없어졌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 가파른 길을 올라서니 태극기와 유엔군 깃발이 날리는 우리 군 전망대와 인공기가 펄럭이는 북한군 초소가 한눈에 보였다.

태풍전망대는 최근 남북한 평화 무드로 관광객의 발걸음을 불러들이고 있다.


연강갤러리에 전시된 '앤드류 부겔'의 조형물과 '평화의 문'. 사진=김수언기자

◇남북평화 기대감 한편 북한 태도변화 우려도

전망대를 구경하던 세 부녀는 충청북도 청주에서 안보 관광지를 둘러보고 싶어 찾았단다.

아버지 추교웅(51) 씨는 “6·25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반공교육이 심했던 시절을 살아왔다. 때문에 나 같은 시절을 살아온 세대들은 전쟁의 아픔과 국가안보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면서 “요즘 세대들은 그러한 안보개념과 6·25전쟁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주기적으로 안보교육차 안보 관련된 지역들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모란봉클럽’과 같은 북한 관련 프로그램을 챙겨본다는 그는 한반도 평화무드에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북한의 태도 변화를 우려했다.

그는 “최근 한반도 정세가 평화무드이기에 기대가 된다. 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북한의 속내를 알지 못하는 것”이라며 “겉으로만 보여주고 뒤에 가서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도 한다”고 심정을 밝혔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아버지와 함께 안보 관광지를 방문한 추예인(20) 씨는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보이는 북한의 모습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추씨는 “북한땅을 이렇게나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굉장히 가깝고도 멀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북한군 초소가 망원경으로도 보이는데 우리나라보다 훨씬 상황이 열악해 보인다. 평소에 북한사람들이 불쌍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는데 실제로 보니 더 와닿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있는데 보다 개선되고 결과적으로 통일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당장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통일비용이나 통일 후 북한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 비용 같은 것도 천문학적이라고 들었다. 현재 우리나라 사정도 어려운데 과연 우리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고 밝혔다.



◇남북 경쟁하듯 틀어대던 확성기 방송 잠잠해져

가끔 북한 땅을 바라보러 인천에서 태풍전망대를 찾고 있는 박재형(63) 씨는 마음대로 이북땅을 오고가지 못하는게 마음이 아프다.

박씨는 “북한 땅을 바라보면 속이 시원해지고,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보면 코앞에 북한이 있는데 마음대로 오고 가지 못하니 마음이 아프다”면서 “요즘 남북이 화해무드로 접어들고 평화라는 가치가 높아지니 어서 통일이 돼서 서로 왕래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확성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최근 분위기 변화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예전부터 이곳(태풍전망대)을 종종 찾아오곤 했는데 남북이 한참 긴장상황이었을 때는 남북 서로가 확성기 방송을 틀어대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끄러웠던 방송소리가 안 들린다”면서 “어떻게 보면 현재 남북 관계를 말해주는 가장 큰 증거다. 보면 알겠지만 앞에 임진강만 건너면 이북이다. 철조망이 없었다면 실향민들이 고향에 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태풍전망대를 내려오는 길. 국내 유일의 DMZ내 미술관인 연강갤러리를 방문했다.

도슨트(갤러리안내인)의 안내로 갤러리를 돌았는데 연강갤러리를 에워싼 문이 눈에 들어왔다.

갤러리 전체를 감싸 예술품이라고 미처 생각못한 이 작품은 680개의 문으로 만든 작품 ‘평화의 문’이었다.

문 중간중간에는 주한 외국대사관에서 각국의 언어로 보내온 평화의 메시지가 새겨져, 남북간 평화에 대한 전 세계의 바람을 보여주고 있었다.

도슨트는 “앤드류 부겔(Andrew Voogel)이 설치한 동으로 된 조형물이 있다”면서 “이 조형물은 칠이 잘 벗겨지지 않도록 작업을 했는데 누구나 두드릴 수 있게해서 칠을 벗겨내라는 의도로 외부에 설치돼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바라면 이뤄진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접경지역 마을 행사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접경지역 연천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하나같이 평화를 바라고 있다.

은금홍(70) 중면 횡산리 이장은 민통선 출입 과정이 예전과 비교해 부드러워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은 이장은 “훈풍이 불면서 민통선 출입이 많이 유해졌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도”라면서 “민통선 초소 안에 살고 있으니 실제로 많은 출입 제한을 받는데 출입할 때마다 신분증을 제시하는 과정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이것은 작지만 아주 큰 차이”라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우리나라가 경제·군사력으로 우위인 만큼 평화의 제스처를 보여주고 기다리는 것이 관계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과거에는 남북이 서로 불신해 일진일퇴만 거듭하고 관계에 발전이 없었다. 전쟁은 경제력 싸움인데 북한은 남한에 경제력으로 상대가 되질 않는다”고 밝혔다.

은 이장은 “유리한 고지에 있는 우리가 북한에게 조금이나마 평화의 제스처를 보여주고 기다린다면 좀 더 관계가 발전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곡읍에 거주하는 서성철(54) 씨도 밝아진 남북 분위기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를 알렸다.

서씨는 “나 뿐만 아니라 이번 정부 들어서 밝아진 남북 분위기에 마을 주민들은 대체로 기대감을 걸고 있다”면서 “연천은 38선 기준 이북으로 휴전협정 전까지는 북한땅이었던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의 어른들은 그때부터 북한에 대해 말을 아끼거나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하지만 올해 들어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평화무드가 형성되면서 마을도 덩달아 밝아졌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대체로 38선 인근에서 거주하는 분들은 보수적인 성향을 띄고 있지만 요즘은 보수적인 마을 분위기가 많이 개방이 된 느낌”이라면서 “한 예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마을주민들을 격려하는 마을 행사에서 그 동안 6·25 당시에 불렀던 노래나 군가를 부르곤 했는데 이번 행사 때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를 정도로 마을의 분위기가 밝아졌다”고 말했다.
연천BIX부지 경계에 적혀있는 군 훈련장 출입금지지역 경고문. 사진=김수언기자

유일한 민통선 내에 위치한 마을인 파주시 군내면 대성동의 김동구(50) 이장은 주민들이 걱정과 두려움 없이 안정적으로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바뀐 분위기를 전했다.

김 이장은 “최근 들어 한반도에 불고 있는 남북관계 훈풍은 우리 주민들이 당연히 반길 일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남북기류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면서 “아무래도 분위기 자체는 이전보다 좋아진 것 같다. 평화 분위기 속에서 주민들이 걱정과 두려움 없이 안정적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화를 바라고 통일을 소망하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간절한 마음이 지척거리에 있는 북한 땅에도 전해질 날을 기대한다.


조윤성·김수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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