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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삶] 오 윤(1946~1986)의 ‘팔엽일화(八葉一花)’

최은주 2018년 07월 12일 목요일

아주 오래 전 한국 근·현대 판화를 연구하고 전시를 기획하던 때에, 그 특성을 살펴보기 위해 전통 목판화까지 살펴보았던 적이 있다. 그때에 습득한 지식 몇 가지는 한국 판화의 역사가 암각화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구하다는 것과 팔만대장경, 오륜행실도 등 불교와 유교의 교리를 전파하는데 유용한 전달매체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판화기법이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 파고들어 책을 만들거나 떡을 빚거나 옷감을 장식할 때에도 활용되었다는 점 등이었다. 그런 중에 알게 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한국 전통판화가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판화와 비교하여 매우 독자적인 예술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데 그것은 다름 아닌 각법(나무를 깎는 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중국 전통판화의 형식미나 일본 전통판화의 장식미와 대비되는 각법의 예술성이 한국 전통판화에서 구현되고 있음을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언급하는 것이었다. 도려내고 튕기고 꺾어 지르는 칼맛의 정수는 한국 판화가 으뜸이라는 이야기이다.

▲ 오윤, 팔엽일화, 1985, 종이 목판 채색, 53.5x53.5cm

오윤의 목판화를 보게 되는 때이면, 지금은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옛 각수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나무를 쓰다듬고 마름질하고 거기에 조각칼을 대어 형상을 만들어내고 먹을 묻혀 찍어내던 그들의 노동과 고된 노동 사이사이에 스며든 해학의 미학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옹골찬 공동체 의식과 만나게 된다. 모두 다 알다시피 오윤은 한국을 대표하는 민중미술작가이고 그가 다루었던 대상도 노동자, 농부 등 현실적 삶을 상징하는 사람들이었다. 1970년대에 제작된 그의 초기 목판화 ‘대지’나 ‘모자’, ‘짊어진 사람’ 등은 청년기 오윤의 시대와 사회에 대한 날선 의식의 형상화였다. 그러던 그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보여 준 변화는 좀 더 전통적인 것, 보다 민속적인 것, 보다 원형적인 무엇이었다는 것을 ‘춤’, ‘도깨비’, ‘원귀도’같은 연작이 보여준다. 불과 40세에 요절한 오윤은 작고하기 직전 3~4년 동안에 그의 대표작이 된 위의 목판화 명작들을 쏟아내듯이 제작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의 각법은 더욱 변화무쌍하고 단호해졌으며 형상을 그려내는 화가로서의 상상력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주제의식은 더욱 선명해졌다.

이 그림 ‘팔엽일화’는 1985년에 제작된 것이다. 여덟 장의 잎이 모여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 연화도이다. 그런데 한 장, 한 장 꽃잎 속에 새겨 그려진 인물들은 모두 원귀, 굶어 죽었거나, 목이 잘려 죽었거나, 창에 찔려 죽은 억울한 영혼들이다. 그렇지만 그림의 한가운데에는 그들의 원한을 모두 씻어내어 풀어주는 춤추는 어미가 있다. 불쌍한 영혼들을 힘찬 춤사위로 구원해 주는 어미의 불끈 쥔 두 주먹과 굳건한 버선발은 시공간을 진동시켜 어떠한 역경도 이겨낸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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