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등 우려로 소급적용 안해 시행 이후 지어진 건물만 강제… 기존 주택 화재 대응엔 무방비

▲ 지난 8일 대부분 퇴근 차량이 귀가한 오후 10시30분께 의왕시 오전동 K아파트단지. 주차장 정 가운데 위치한 '소방차전용구역'을 양측으로 이중주차된 차량들이 둘러싸고 있다. 하지만 소방차전용구역 주차시 과태료를 물도록 하며 내일부터 시행되는 법률개정안은 기존 아파트단지에 대해 소급 적용을 하지 않는다. 김준석기자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화재와 같은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해 아파트단지 내 소방차전용구역 확보가 의무화 되는 소방기본법 개정안이 10일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주차공간이 부족한 구도심 아파트 등에는 해당 개정안이 소급 적용 되지 않으면서, 구도심 아파트 화재 사고에 대한 예방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8일 오후 10시30분께 의왕시 오전동 K아파트단지(2개 동, 지상 15층)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는 대부분 차량이 귀가해 아파트 주차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 아파트는 지어진 지 24년이 지난 건물로, 지하주차장은 별도로 없었다.

주차장 양 옆으로는 이중주차 차량들이 빽빽하게 가로 막고 있어 주차 여유공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차장 가운데 바닥에 노란 선으로 그려진 '소방차전용구역'은 주차 차량에 둘러싸여 소방차 출동시 진입이 불가능해 보였다.

같은날 오후 11시30분께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H아파트단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983년 1천185세대가 입주한 이 단지는 총 10개 동(지상 12층)마다 한 개씩 소방차전용구역이 설치돼 있었는데 5개 구역은 일반 주차 차량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주민 황모(45)씨는 "차량들이 소방차 진입을 막아 문제가 제기됐던 걸로 알고 있다"며 "주차공간 부족으로 마땅한 대안이 없을진 모르지만 그렇다고 화재시 발생할 대형 참사를 지켜만 볼 수는 없지 않겠냐"고 호소했다.

9일 오후 2시께 찾아간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W주공아파트단지(8개 동, 지상 15층)는 소방차전용구역이 아예 설치돼 있지 않았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30년 전 지어진 아파트라 지하주차장도 없고 주차공간이 부족한 데 주민들이 가끔 소방차 진입 가능 여부를 묻는다"며 "만약 우리 단지 어느 동에 야간 시간대 소방차가 진입하려면 최소 20대의 차량은 빼야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지만, 해당 아파트 모두 이번 개정안의 과태료 부과 대상이 아니다.

공동주택 소방차전용구역 내 주차시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한 이번 개정안은 시행 이후 새로 지은 아파트단지 등에만 적용토록 하고 있다.

기존 아파트를 상대로 해당 개정안을 소급 적용하기엔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한 법률개정안이 정작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법률 개정 당시 기존 주택 일부에 대해서라도 소급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지만 민원 등 우려로 신축 아파트에만 적용키로 결정됐다"며 "기존 아파트에 대해선 적극적인 홍보와 행정지도로 시민 의식 전환 등 사고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석기자/joon@joongboo.com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