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살 깎아먹기' 우려에도 신제품 출시하는 이유는?

신제품은 매출 향상 등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 있지만 기존 제품의 판매량과 수익성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상을 ‘카니발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이라고 한다.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2차 신대륙 항해 시 서인도제도 동쪽에 있는 소앤틸리스 제도에 도착했다. 그곳 사람들은 자신들을 ‘canibalis’라고 했다. 오늘날의 카리브해라는 이름의 유래인데, 카리브족 중 일부는 식인 풍습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 사람들의 이름을 따 식인종을 ‘cannibal’이라고 지칭하게 됐다.

카니발라이제이션을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자기 시장 잠식’을 뜻한다. 한 기업에서 새로 출시하는 상품으로 인해 그 기업에서 기존에 판매하던 다른 상품의 판매량이나 수익, 시장점유율이 감소하는 일명 ‘제 살 깎아 먹기’ 현상을 가리킨다. 카니발라이제이션이 일어난다는 것은 해당 제품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사가 시장을 선점하고 점유율을 늘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사 기존 제품의 점유율이 감소를 하더라도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A휴대폰 회사는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출시하자마자 많은 인기를 끌었고 곧바로 B휴대폰 회사가 비슷한 기능의 제품을 출시하면서 시장에서 두 제품이 경쟁하기 시작한다. 두 회사는 가격을 낮추거나 사은품을 증정하는 등의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게 된다. 경쟁이 심화될수록 두 회사는 얻어 갈 것이 줄어들고, 기존 경쟁에서 별로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탑재한 휴대폰을 출시해서 미리 시장을 선점할 계획을 세운다. 기존 제품의 시장 점유율을 깎아먹는다는 것을 알지만 말이다.

과거 120년 넘게 필름 카메라 분야의 선도기업이 있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필름 시장의 90% 점유율을 자랑하던 이 기업은 2012년 도산을 하게 되는데, 바로 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카니발라이제이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지만 자사 필름 카메라 매출 타격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상업화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카메라 시장은 디지털로 재편됐고 다른 기업들에게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내주게 되면서 파산신청 절차를 밟게 된다.

기업은 카니발라이제이션을 적절하게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 많은 연구를 통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고 한발 앞서 시장에 출시한다면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한수전(경영학박사) NH농협은행 경기영업본부 마케팅추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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