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산부인과 의사들의 ‘인공임신 중절 수술’ 이른바 ‘낙태수술’ 전면 거부선언으로 사회가 떠들썩했다. 낙태는 원칙적으로 불법의료행위 이나 실상은 달랐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낙태건수는 한해 100만 건으로, 1시간마다 125명의 여성이 아이를 지우는 셈 이라고 한다. 물론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원론적인 사회문제와 낙태를 근절했을 때의 부작용을 무시할 수 없으나 자살, 안락사, 유전자 복제, 동물학대 등과 더불어 ‘생명 경시 풍조’를 거론할 때 빠질 수 없는 이슈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을 씁쓸하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꽃보다 사람이고 우주보다 귀한 것이 생명이라 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OECD 국가 중 자살율 13년 째 1위’와 같은 대한민국의 불명예스러운 여러 지표는 우리 사회에 얼마나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한 지 보여주고 있다. 오랜 기간 제기된 문제이지만 13년 째 개선됨이 없다는 증거이다.

충(忠)과 효(孝)를 중시하는 공동체 환경에서 현대사회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자살 등 생명 경시풍조. 그리고 각종 폭력과 자살을 자극적인 소재로 활용하는 일부 대중문화의 무분별한 모방은 무엇보다 아동·청소년의 인격을 황폐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라 할 수 있다. 특히 ‘자살’은 우리 사회가 하루 빨리 벗어 나야할 생명경시의 어두운 단면이다.

생명경시의 문화를 생명존중과 생명사랑의 문화로 바꾸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명이다. 부와 출세, 성공이나 명예보다 나누고 베푸는 즐거움, 약자를 보호하고 부당함에 맞설 수 있는 용기와 정의감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아야 한다. 혼자만의 의지로 삶을 헤쳐 나갈 수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을 위해 ‘당신’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같이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우리 사회를 ‘보호받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부 어딘가에 문제가 있거나 부족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자로 태어나서 약자로 돌아간다. 제 아무리 힘이 세고, 권력과 자본이 건실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살다보면 부딪힐 수 있고 꺾일 수도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느끼는 패배감, 배신감, 공포와 슬픔을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한다.

정부는 자살예방을 위해 자살예방 전담조직을 구성, 자살예방 전문상담가 양성 등의 정책을 내걸었다. 관련 법률을 개정, 시행으로 심리상담과 치료 등의 지원 제도가 보완된 또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인 보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관 주도형 운영에 맡기지 않고 시민사회단체가 중심이 되어 자발적인 생명사랑 운동을 펼쳐 나가는 것이다.

필자도 참여하는 ‘생명존중시민회의’에서는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명존중 1000인 선언문을 발표하고 범국민 생명존중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기업 참여 활성화를 위해 ‘롯데그룹’과 생명존중을 위한 상호협력 조인식을 진행하였다. 특히 롯데에서는 임직원 ‘생명사랑지킴이양성’ ‘사내 콜센터 등 감정노동 직군 심리상담 강화’ ‘자살유가족 힐링콘서트 초청 등’ 생명존중 기업문화 조성에 적극적인 참여를 약속하였다. 또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생명존중 백만인 서약운동을 시작하여 우리 국민 모두가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적극 노력할 것이다.

이런 작은 노력이 모여 생명을 살린다고 믿는다. 이보다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저마다 생명을 포기해야 되는, 생명을 희생해야 되는 많은 순간이 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조성철 한국사회복지공제회 명예이사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