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동쪽과 북쪽을 가로지르는 내부순환도로의 밤은 화려했다. 적어도 내가 사는 옥탑방 창문 안으로 새어 드는 수많은 가로등 불빛은 눈이 시릴 정도였다. 20년 전이다. 학교 근처 미아리고개에 자리 잡은 4층 건물. 낡지 않은 건물은 옥탑방만 조립식이었다. 건물주는 일흔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혼자 사는 옥탑방 여대생에게 각별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삼대가 모여 사는 건물주의 가족이 모두 그랬다. 조립식임에도 지붕도 벽도 튼튼했고, 침대며 옷장을 들일 만한 공간도 충분했다. 이사 전에는 여대생 취향(?)의 민트 색깔이 들어간 벽지로 새로 도배가 됐다. 흰색이었던 벽의 여백도 민트 색깔로 뒤덮였다. 사는 동안 바퀴벌레 한 마리 목격한 적 없다. 여름에도 더운 줄 몰랐고, 겨울에도 한기를 모르고 살았다. 새벽에는 어학원, 낮에는 학교와 도서관을, 저녁에는 아르바이트 현장을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느라 적당한 집이 주는 안락함을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20대가 겪는 서울살이의 외로움과 고단함이란 꿈꾸는 듯한 내부순환도로의 밝은 조명만으로도 충분히 이겨낼 만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라는,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얘기를 듣게 된 건 그로부터 10여 년 뒤다. 당시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다가 대출이자와 빚에 짓눌려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온갖 사연이 주변을 맴돌았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더 지나갔다. 정부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주택시장 과열을 잡기 위해 지난 13일 초강력 대책을 내놨다. 다주택자 세제 강화와 대출 제한 등으로 주택 수요를 억제하는 내용이다. 이번 대책을 두고 ‘역대급 최강’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는 심상치 않은 집값 과열 분위기를 대변해 준다. 최근 주택시장이 달아오르면서 누구나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기 지역 신도시 역세권 아파트 분양 소식이 들리면 주변이 온통 들썩였다. 집값은 계속 오를 테고, 청약 당첨이야 운에 맡기는 식이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판단에 따라 너도나도 청약 대열에 합류했다. 당첨만 된다면 억 단위 시세 차익을 노려볼 수 있어서다. 직장인이 수개월 만에 1억 원을 모으려면? 요행을 바라고 복권을 사지 않아도 청약에 답이 있었다.

불안한 시그널은 서울에서 먼저 감지됐다. 한국감정원의 8월 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수요가 지난 3월 이후 5개월 만에 공급보다 많아졌다. 4월 이후 주춤하던 거래도 다시 늘었다. 지난달까지 역대 최장인 49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왔다. 전문가들은 이미 소득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고 경고했다. 10여 년 전과 집값 짬짜미(담합)까지 닮았다. 입주민 카페나 단톡방, 심지어 아파트 엘리베이터 주변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포착된다. 자신들의 아파트가 저평가 받고 있기 때문에 가격을 낮게 부르는 부동산 사무실에 절대 매물을 주지 말자는 운동이다. 더욱이 이를 ‘허위매물’로 가짜 신고도 일삼는다.

정부의 투미한 정책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8·2 부동산대책 후속 조치로 양도세 등 임대사업자에 대해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담아 지난해 말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이 받아들이는 반응은 정부 기대와는 다른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임대등록제를 지렛대 삼아 집을 추가로 사며 올해 집값 과열을 부추긴 것이다. 특히 정부는 지난 1월 말 관련 규정을 바꿔 주택을 담보로 한 임대사업자 대출을 기업대출로 분류해 주택담보대출 규제에서 제외했다. 다주택자 주택 투기를 겨냥한 역대 최강이라는 지난해 8·2 대책이 곧 투기 수요의 도구가 됐던 것이다. 허점이 드러나자 틈새로 파고든 투기 자본은 정부 정책을 비웃으며 집값 상승을 부채질했다.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인상 계획을 언급해도 시장은 또 다른 부작용을 예상하며 정부 정책의 반대 방향으로 힘을 키워온 것이다.

현 정부의 정책이 도리어 집값을 더 올렸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우리는 더 이상 무책임한 정부, 무능한 정부를 원하지 않는다. 엇나간 정부의 부동산 정책 탓에 이번 고강도 정책에도 주택시장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싸늘한 울림을 던진다. 서울은 물론 경기 지역까지 파고든 가파른 집값 상승세와 집값 담합 움직임이 10여 년 전 상황이 눈앞에 닥쳤음을 예고하는 시그널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금미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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