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후면 한가위 추석이다.

어렸을적에 누구나 손가락으로 손꼽아 기다리던 추석이 다가온다.

추석 명절이 학생은 학교 안가고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몇일 푹쉬는 긴 공휴일로 돼 버렸다.

경제력이 좋은 사람들은 긴 연휴를 이용해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

내가 기억하는 추석은 설과 함께 최고의 고유 명절이였다.

삼복 더위가 끝나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 지면서 들판의 벼들이 누렇게 익어 갈때 쯤 추석날 차례상에 쓸 술을 정성껏 담가 안방에 둔다.

그려면 술익는 새콤달콤한 냄새가 나면서 보글보글 술익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그 냄새 그 소리가 그립다.

또 지금은 기억속에만 존재하는 부모님과 먼저 가신 옛사람들이 함께 그리워 진다.

어제 이른 아침에 농산물 새벽시장에 갔었다. 추석전을 앞둬서 그런지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훨씬 많아 복잡했다.

일찍 온 사람들은 사과 다섯개 배 한개를 비닐 봉지에 들고 가는게 차례상에 올릴 과일임을 짐작 했다.

요즘이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옷이나 신발 그리고 양말을 언제든지 마음대로 사서 신고 입는다.

해지거나 떨어져서 못 입는게 아니고 입기 싫어 안 입고 버린는 뜻이다.

그 옛날에는 설이나 추석이 되야만 새옷을 입을 수가 있었다. 새로 사온 옷에서 나는 새옷 냄새가 참 좋았다. 그 냄새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특히 새 운동화를 사 주었을때는 흙이 묻을까 방안에서 새신을 신은 그 기분은 하늘을 나는 듯 했다.

조용하기만 하였던 시골 마을에 객지에 나갔던 사람들이 양손에 가득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오는 모습으로 온 동네가 환하게 빛났다.

그 때만해도 자가용이 없어 대부분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드물게 다니는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다녔다. 앞산을 바라보면서 뒤로 산을 등지고 길게 늘어진 마을 중간에 우리의 집이 있었다.

그래서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 볼 수 있었다.

아들 딸을 맞이하는 집집마다 떡과 과일을 준비해서 차례도 지내고 이웃과 나누기도 했다.

추석에는 대부분의 집에서 송편을 만들었다. 송편을 만들려면 솔잎을 뒷산에서 따오는 것은 대부분이 아이들의 몫이었다.

그래도 그런 심부름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행복했던 순간이였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삼십여년전 출가한 이후에는 한번도 고향에서 명절을 보낸적이 없다.

추석‹š 절에서 합동 차례를 지낸다. 그러니 항상 고향에서의 명절 풍경은 출가 이전의 그 때에 머물러있다.

큰집부터 마지막 작은집까지 차례대로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다 지내고 잘 차려진 큰상에 둘러 앉아 제주로 음복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형제간의 우애를 다진다.

그랬던 명절이 달력속에 이름으로만 남아 가는 게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얼마전 신문를 보니 제사와 명절 차례를 안 지내는 집들이 많아 지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자기 조상을 잘 위하는 게 인간의 도리인데 자꾸만 사람의 도리를 져버리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병들고 황폐화된다는 뜻이다.

선대 조상을 잘 위하는 게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다. 조상님을 잘 모시는 사람이 부모나 어른을 공경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인류애가 생긴다.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가 건전 사회가 되고 아름다운 나라이며 잘 사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우리의 조상을 우리가 모시지 않으면 누가 모셔 주겠는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주위에 사람 사는 모습을 다양하게 지켜 봤다.

부모 형제를 귀하게 여기고 자기 조상을 잘 위하고 마음씨 고운 사람들이 다들 행복하게 부자로 잘 사는 것을 봤다.

전통이란 문화이며 자존감이고 우리들의 시대정신이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다문화 가족들도 많고 북한에서 이주해온 사람들도 종종 만날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이 추석날이 더욱더 외롭고 쓸쓸하게 지낼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도 사람의 도리이다.

효도는 아무리 해도 과함이 없고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추석에는 마음껏 효도를 하자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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