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 중에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름 한 철에 베짱이가 나무 그늘에서 노래 부르고 게으르게 놀 때 개미는 열심히 일해서 먹이를 모아 저축했는데 드디어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지자 여름에 땀 흘려 먹이를 모아둔 개미는 겨울을 잘 지내고 있지만, 베짱이는 거지가 되어 동냥을 다닌다는 우화입니다. 평소에 나태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고 준비해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차후의 어려움에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적 내용입니다.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할 이 이야기의 교훈에 현대 사람들은 이야기 결말에 살짝 비틀기를 시도하는 위트를 보입니다. 베짱이는 여름 내내 노래를 연습해서 가을에 오디션에 나가 일등을 하고 유명가수가 되어 온갖 부와 유명세를 누리며 살았다던가 개미는 계속 일만 하다가 허리 디스크를 얻어 내내 골골거리며 살았다는 이야기들이 그것입니다. 이 현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우화의 결말에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건 아마도 이 새로운 결말이 요즘의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 겁니다.

우리는 20세기에 격동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식민지 시절이 있었고 해방을 맞고 나서 타의에 의한 분단을 겪고 민족상잔이라는 민족사의 거대한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이어 정치적 혼란기와 경제적 성장기를 동시에 헤쳐 나왔습니다. 수출확대와 국민총생산의 제고가 지상과제인 시기를 지나 선진국 대열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한 국가가 한 세기라는 시간에 걸쳐 이러한 압축적인 부침을 겪은 일은 세계사에 드문 사례일 것입니다.

입에 풀칠하기 버거웠던 시절, 부지런함과 자기희생은 필요불가결의 덕목이었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로지 나와 가족의 더 나은 생존조건을 위해 쓰여야만 했습니다. 나는 억척스러워야 했고 참아야 했고 먹고살기 위해 오랜 시간 힘들게 일해야 했습니다.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겪고 21세기에 들어서서 우리는 세계의 내로라하는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세계질서의 당당한 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치적으로 성숙했으며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문화적으로 토대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 세기가 역사의 바닥에서 시작해서 앞뒤 잴 여유 없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서 남들이 깜짝 놀랄만한 발전을 이루어낸 외형의 기간이었다면 이번 세기는 이 외형에 내실을 기할 시간입니다. 국민 모두가 세계 최빈국의 경제에 신음하던 스펙트럼은 어마어마하게 넓어져서 이제는 부의 양극화가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압축 성장에 따른 정신적 공허함과 스트레스가 우리 모두의 갈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가 여가라는 이름으로, 워라벨이라는 이름으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됩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에는 사람들이 교육기관으로, 문화센터로, 북카페로 달려간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저는 이 욕구의 해결책으로 문화와 예술을 추천합니다. 문화와 예술은 우리 정신의 공허함을 가득 채워줄 뿐 아니라 내 삶의 가치를 올려주고 풍성함을 선물하고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문화예술은 소통의 창구입니다. 영혼과 감성이 만나면서 우리 시대 단절된 서로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의 역할을 합니다. 문화와 예술이 제공하는 공동의 장에 나아가 우리는 하나 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문화와 예술을 직접 경험하고 체득하며 이를 즐기고 기쁨을 만끽하면서 우리네 삶은 고양되고 세련되고 품격을 갖춘 인격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문화와 예술은 이제 삶의 방식에 있어서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서슴없이 문화와 예술이 함께하는 방식을 택하겠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개미와 베짱이의 삶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부지런히 일하면서 동시에 나의 삶을 문화와 예술로 풍요롭게 가꾸는 개미와 베짱이를 합친 ‘개짱이(?)’의 삶을 살아보자고 제안 드립니다.

박명숙 성남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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