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추석 명절이면 가족·친지가 모두 모여 송편 등 명절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부녀자들은 강강술레를, 건강한 남성들은 모래판에서 서로의 힘과 기량을 겨루기도 했다. 또 마을의 단합을 보여주기 위해 절대 질 수 없는 한판 승부 줄다리기가 펼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에는 추석 전통 놀이가 사라진지 오래다. 마을마다 함께 음식을 해먹고, 이웃 어른들께 인사를 하던 시끌벅적했던 명절의 분위기는 점차 작아지고 있다. 대신 그 자리는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추석이면 우리 조상들과 어른들이 즐겼던 놀이를 알아보고, 이번 명절에는 이웃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거북놀이

거북놀이는 경기지방의 무속이 지닌 굿의 방식과 풍물이 함께 어우러진 집단놀이로서, 단순히 오락이나 놀이기능만이 아니라 마을의 안녕과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성격을 지니며, 놀이를 통해 이를 통해 걸립한 모곡(募穀)은 마을 주민들의 공익(公益)을 위해 사용됐다.

청도, 경기도에서 연희돼오긴 했지만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기물(器物)이나 놀이 과정의 구체적인 형태가 복원돼 전해 오는 것은 경기도 이천지방의 거북놀이다.

거북놀이는 수숫대를 벗겨 거북 모양을 만들어 그 속에 두 명이 들어가서 마치 거북이처럼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논다. 놀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거북몰이가 거북의 목에 줄을 매어 앞장서 끌고 가고, 그 뒤에는 풍물패가 꽹과리, 북, 소고, 징, 장구를 치면서 따르며 행렬은 마을을 한 바퀴 돈다. 그 다음에 놀이패들은 비교적 부유한 집을 찾아가는데, 대문 앞에서 풍물을 친 다음 거북몰이가 “이 동해 거북이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하면, 주인이 나와서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라고 한다. 이후, 그 집 마당에서 한바탕 춤을 추면서 논다.

거북놀이도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경기도 광주에서는 거북이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 것을, 집주인이 보면 거북몰이가 배가 고파 떡이 먹고 싶어 그런다고 말한다. 그러면 집주인이 음식을 차려 내놓는다. 그리고 거북을 만드는 재료로 수숫대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왕골이나 나뭇잎도 사용한다.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삭전(索戰)·조리지희(照里之戱)·갈전(葛戰)이라고도 한다.

기원에 대해서는 당나라 봉연(封演)이 쓴 ‘봉씨문견기(封氏聞見記)’에 춘추시대 오(吳)·초(楚) 사이의 싸움에서 유래했다고 하고 있으나, 그보다는 풍년을 비는 농경의식으로 그 이전부터 행해졌다고 본다.

줄다리기의 방법은 두 패로 나눠 굵은 줄을 서로 잡아당겨 자기 편으로 끌어 온 쪽이 이기는 놀이다.

이 놀이는 주로 중부 이남지역에서 많이 했는데,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충주지방, ‘동국세시기’에는 충청도·경기도·제주도 등지의 줄다리기 풍속이 기록돼 있다.

줄다리기는 예로부터 대보름날에 행하는 것이 상례로 돼 있는데, 동래지방에서는 단오날에, 제주도에서는 한가위에, 그리고 전라도 서해안지방에서는 2월 초하룻날(하리다리날)에 놀기도 한다. 이 놀이는 대보름날에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하는 단체놀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놀이로서, 작은 마을에서는 하룻 동안 놀지만 큰 고을에서는 며칠에 걸쳐 논다.

줄다리기의 편가르기는 육지 지방에서는 대개 동부와 서부로 나누며, 섬지방에서는 상촌·하촌으로 나누어 상촌은 남자편, 하촌은 여자편이 된다. 그리고 장가 안 간 총각은 여자편이 된다.

한편, 예전에는 줄다리기를 통해 풍흉을 점치고 풍년을 기원했으니, 지금의 단순한 오락의 차원이 아닌 생존의 차원에서 행해졌으며, 따라서 신앙성까지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씨름

씨름은 여러사람이 한 집단 또는 사회를 이루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났다고 짐작할 수 있다.

원시사회 사람들은 먹이를 구하거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맹수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됐으며 다른 핏줄의 집단과 생활권의 확보를 위해 집단적으로 싸우기도 했다. 이때 싸움의 방법으로 격투가 벌어졌을 것이니 이것이 곧 씨름의 시초로 보인다.

따라서 원시인들은 생존을 위해 격투기술을 점차 발달시켜 나갔으며, 여기에서 씨름이 1대 1의 격투기술로 개발돼 널리 응용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개인놀이, 상대놀이, 소집단 놀이, 대동놀이로도 존재했던 씨름은 단오와 백중 그리고 추석, 정월대보름에 행해졌다. 힘께나 쓰는 사람들은 씨름판을 벌이는데, 어린이들은 아기 씨름을 하고 장정들은 어른 씨름을 한다. 잔디밭이나 백사장에서 구경꾼에 둘러싸여 힘과 슬기를 겨루게 된다. 씨름에서 마지막 승리한 사람에게는 장사라 부르고 상으로 광목, 쌀 한가마 또는 송아지를 준다.

인간의 지적 향상과 집단의 정치적·경제적 발달에 따라 씨름은 무예로 발달해 왔으며, 개인적 방어술이었던 씨름이 무술의 하나로서 발전하게 되는 것은 사회의 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였다.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우리 고유의 정서와 우리말과 리듬이 잘 담겨있는 무형 문화유산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원시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지역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는 어휘와 반복되는 후렴, 리듬의 강약, 변화무쌍한 의성어와 몸동작은 어떤 무형 문화유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양성을 보여 주고 있다.

노래하고 춤추는 동안, 여성들은 둥그런 모양을 만들기 위해 손을 맞잡고 앞소리를 하는 사람이 빠르기를 정한다. 함께 춤추는 사람들은 앞소리를 하는 사람의 뒤를 따라 다음 가사를 노래하며 이것을 뒷소리라고 한다. 강강술래에는 민속 신앙과 민속 춤 이외에 민속 음악이 결합돼 있으며, 한국의 전통적인 악기도 함께 곁들여져 흥을 돋운다.

노래에서 거듭 반복되는 ‘강강술래’라는 후렴구에서 이름이 유래했지만 그 정확한 의미는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강강술래는 기록에 의하면 강강술래는 임진왜란 때 일종의 군사 전략으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대 중국의 문헌에 의하면 강강술래의 원형은 약 2천년 전에 존재했던 마한의 농촌 풍습에서 발견되는데, 이처럼 인류 역사상 무형의 문화유산이 오래 전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전통적으로 강강술래는 설·대보름·단오·백중·추석·중구절(重九節) 등 한국의 대표적인 명절에 행해졌으며, 그 가운데 추석에 하는 것이 가장 규모가 컸다.

한편 강강술래는 1966년 2월15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됐고 2009년 9월30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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