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제도는 1950년대 영국에서 도시주변 녹지 환경을 조성하고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처음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시 확장 방지, 도시 주변 자연환경 보전, 도시민 레크리에이션 용지확보, 대기오염 예방, 상수원 보호, 국가안보 등을 위해 1971년 서울을 시작으로 14개 도시 주변을 그린벨트로 지정하면서 도입되었다.

하지만 당시 권위주의 정권이 강압적으로 이를 추진하면서 적지 않은 부작용과 피해자들이 나오게 된다. 때문에 오랫동안 그린벨트는 마치 독재정권이 단행했던 폭정의 하나로 인식되어 온 측면이 있다. 특히 야당과 민주화 세력들은 그린벨트를 강하게 비판했고 선거 때마다 쟁점으로 부각되었었다. 이에 따라 1990년 이후 그린벨트 이용에 대해 조금씩 규제가 완화되어 오기는 했다.

결국 그린벨트 제도가 해제되기 시작한 것은 ‘그린벨트 전면 해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부터다. 정부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7개 중·소도시는 전면해제, 서울을 포함한 나머지 7개 도시는 부분 해제지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말이 부분 해제지 현재 서울 주변의 그린벨트는 서부와 남서부 등 일부 지역에만 남아있다.

이렇게 많은 비판을 받아온 그린벨트 제도지만 다른 한편으로 긍정적 평가가 상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급속한 도시화가 이루어졌던 1970~80년대 그린벨트는 그나마 도시환경을 보존하는 최후의 보루 같은 역할도 했다. ‘보여주기 식’ 전시행정이라고 비판받았던 산림보호정책과 함께 그린벨트는 장기적 안목에서 추진된 모범적인 정책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1980년대 서울에 개최된 한 세미나에 참석했던 미국인 노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발표 서두에 한국전쟁 직후 한국에 왔었고 1968년 이후 20년 만에 한국에 왔다면서, 크게 변화된 서울을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말 감탄한 것은 비행기에서 내려 보이는 울창한 숲이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의 산들은 전부 뻘건 민둥산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나무로 뒤덮인 산을 보니 한국의 미래는 분명 밝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물론 나무 많이 심는다고 빨리 자라지만 경제적 가치는 없는 아카시아와 포풀러 나무를 마구 심는 것에 대해 비난도 많았고, 실제 이 나무들이 경제성도 거의 없고 산림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강압적이고 어떻게 보면 무지하기까지 해 보이는 그린벨트와 산림보호정책은 도시와 국토 환경을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그나마 남아있던 수도권 그린벨트마저 해제하겠다고 한다. 그 이유가 그린벨트 자체 문제 때문이 아니라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동안 주택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지는 않겠다고 확언해왔던 정책기조를 180도 바꾼 것은 분명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더 크게 비난받아야 할 것은 먼 미래를 보고 추진되어 온 그린벨트를 집값 억제와 같은 단기적 목적 때문에 해제한다는 것이 너무나 근시안적이라는 것이다. 한번 훼손된 그린벨트를 다시 조성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런 의미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반대하는 것도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지금 한국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은 ‘정치의 과잉개입’이 근본 원인이다. 갈피를 못 잡고 오락가락하는 경제정책도 그렇고 정치와 가장 거리가 멀어야 한 문화는 이미 ‘정치 지형화’되어 버렸다. 마치 ‘시장이 정부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이는 부동산 파동도 현 정부가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해서 야기된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정치적이지 않은 정책은 없다. 그린벨트 정책도 어쩌면 권위주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유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그린벨트는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에 졸속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 30년 전 한국의 미래가 밝다고 한 교수가 집값잡기 위해 그린벨트 해제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하다.

황근 선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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