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등기부 등본을 발급받았을 때 그곳에 소유자로 등재된 사람으로부터 아파트를 매수하여 소유권등기를 마치고 그 집에서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진짜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아파트를 넘겨달라고 나타나면 그 매수인으로서는 황당하기 이를 데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매수인 입장에서는 국가가 공적으로 관리하는 등기부등본도 믿을 수 없다면 과연 국민은 무엇을 믿고 부동산거래를 안전하게 할 수 있겠는가 반문하면서 순수히 그 상황을 승복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매수자의 입장에 공감이 간다.

안타깝지만 현실에서 위와 같이 억울한 사건이 발생했다. 본래 아파트 소유자는 남편이었는데, 그 남편이 사망하자 아내가 그 아파트를 상속하여 소유자로 등기를 마쳤다. 부동산 매수인은 등기부등본상에 소유자로 등기된 아내를 만나 이를 매수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아내는 내연남과 공모하여 남편에게 니코틴원액을 주입하여 살해한 사실이 드러나 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민법 제1004조에는 상속인이 고의로 그 배우자인 피상속인에게 살해하는 범죄행위를 하였을 때에는 그 상속인에게는 상속결격자로 규정하여 상속권을 박탈하고 있다. 또 민법제1000조에 의하여 아내가 상속권이 없으면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가 없는 경우, 4촌 이내의 방계혈족에게 상속순위가 내려가 결국 3촌 방계혈족인 조카가 상속권자로 되어 그 조카가 위 아파트 매수인에게 소유권말소소송을 제기하고 집을 넘겨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경우 아파트 매수인으로서는 등기부등본을 믿고서 소유자로부터 아파트를 매수했으니 이를 넘겨줄 수 없다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민법상 등기부 기재 소유자는 등기의 공시력·추정력은 있지만 공신력(公信力)은 없다. 등기부에 공신력이 인정되지 않는 우리 법제 하에는 등기부의 기재가 실제법상의 권리관계를 그대로 공시하지 못하고 양자가 괴리되는 현상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매수인은 위 아파트를 위 조카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매도 당시 소유자로 등재된 아내는 매매대상아파트의 진정한 소유권자가 아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신력이란 공적으로 부여하는 신용이다. 부동산 등기부에 공신력이 없다는 것은 등기부등본기재만으로는 실제 소유권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등기 공무원마저도 실질적 심사권이 없어서 형식을 갖춘 등기신청을 모두 접수할 수밖에 없는 마당에 일반 거래자가 등기부 기재 사실을 진실인지 아닌지 심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앞선 사례보다도 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부동산 편취전문사기범이 부동산 소유권 이전등기 관계서류인 인감증명서, 주민등록증 등을 정교하게 위조한 후 등기소에 등기 신청하여 등기공무원도 위조의 정을 모른 채 접수하게 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한 다음 그 부동산을 제3자에 매도한 경우가 있다. 나중에 위조에 의하여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본래의 진정한 소유자가 매매 부동산을 위조범으로부터 매수한 제3자를 상대로 하여 소유권말소소송을 제기하여 소유권방해배제청구권을 행사하면, 그 제3자는 꼼짝없이 그 부동산 소유권을 진정한 소유권자에게 반환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이것은 진정한 소유자와 등기부란 공적 공시를 믿고 부동산을 매수한자 중 누구를 보호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등기 공신력 불인정에 의하여 거래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위 부동산 매수자는 그 매도인에게 매도대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제3자는 우선 당장 삶의 보금자리를 잃게 되고 그 매도인이 이미 돈을 사용하여 자력이 없다면 매수자는 하루아침에 큰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게 된다.

비록 확률 상 소수일지라도 선의의 피해는 항상 발생할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부동산 매수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떠한 대책이 있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매수대상 부동산등기부등본상에 기재된 권리자와 그 전 소유자의 이력 및 부동산의 매매내력을 알아본 다음 신중하게 매수한다면, 위와 같은 위험에 처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사회적 제도로는, 사람이 미래에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나 질병에 대비하여 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부동산거래 시 위험에 대비하여 권리보험에 가입함으로써 손실보상 등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비용부담이 수반된다.

국가적 차원에서, 부동산 권리변동 시 형식적 등기 공시관계와 실체관계가 일치할 수 있도록 등기심사를 강화하고, 부득이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에는 피해자에게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책이 절실하다고 할 것이다.

위 철 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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