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이 다가온다. 피붙이가 어느 때보다도 그리울 때다. 70년 가까이 헤어진 가족을 만나보고 싶은 소망은 한마디로 절규(絶叫)에 가깝다. 아니 비탄(悲嘆)이다. 남북정상이 만나 판문점 선언으로 이산가족상봉이 정례화 되길 기대했다. 하지만 올해는 감감 무소식이다. 남북현안 가운데서도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과제인데도 진전이 없다. 이산가족은 대부분 90 고령이다. 이들에겐 시간이 없다. 점차 거동하기도 어려워진다. 최종 선정되더라도 건강 악화로 어렵게 얻은 상봉 기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상봉장을 가지 못하는 애타는 심정을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이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상봉은 정례화 돼야 한다. 가족 간의 상봉은 천륜(天倫)이기에 그렇다.

북?미정상회담 합의로 6?25전쟁 중 북한 땅에서 전사한 미군 가운데 200여 구의 유해가 송환됐다. 미군 유해는 죽어서도 고향을 찾았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산 사람인데도 만날 기약이 없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을까. 이산가족을 애통터지게 한다. 작년보다 322명이 유명을 달리해 생존자는 55,987명이다. 이 가운데 90세 이상이 20.6% 이고 80~89세가 41.1%를 차지한다. 거주지는 경기도가 30%로 가장 많다. 가족을 만나려는 이산가족의 한(恨)을 풀어주는 길이 남북문제의 우선순위에 올라야 한다. 단순히 이산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에 이산가족상봉 후보자 컴퓨터 적십자사 추첨장에서 96세 어르신은 “오늘 안 되면 언제 될지 알 수 없다. 내가 살면 몇 년 살겠냐”라며 고대했지만 결국 탈락했다. 그는 현장을 떠나면서 “이제 난 이산상봉은 내 생애 끝났다.”고 통곡하며 돌아선 것을 기억한다. 절체절명의 처지였을 것이다. 마지막 희망을 거는 90세 이상 고령자 상봉 신청자만 1만1533명에 이른다. 전체 상봉 신청자 133,208명 가운데 이미 7만7221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상봉시 오열을 참지 못하는 가족과 헤어짐이 아쉬워 손을 놓지 못하는 이산가족의 안타까운 모습을 우린 TV로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오는 2월말로 예정된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남북이산가족 상봉도 풀릴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걱정도 앞선다. 현재 미연방정부는 셧다운(shutdown) 기간이기에 그렇다. 셧다운 사태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회담이 이뤄질지 염려가 된다. 최근 이산가족 화상상봉을 상설화하는 데 한?미양국이 공감하고 관련된 대북제재 면제를 검토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설 명절을 계기로 남북이산가족 화상상봉은 무산될 듯하다. 미 정부 부처 간 대북제재 면제 절차를 협의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업과 항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화상상봉은 서울~평양 등에 마련된 특정 장소에서 네트워크로 연결된 텔레비전 모니터를 통해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그간 2005년 처음으로 1323명이 화상상봉을 했다. 2006년에 553명, 2007년에 1872명 등 세 차례에 걸쳐 3748명이 화상을 통해 혈육의 정을 나눴다. 그 후 10여 년 넘게 사용하지 않아 설비 보완 등 개보수가 불가피하다. 특히 평양에 있는 화상상봉 설비를 개보수하려면 미 정부의 ‘제재 면제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 그 과정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비록 영상이지만 설 전후에 가족 간 상봉이 되리라는 일말(一抹)의 기대마저 무너졌다.

정부는 대북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이산가족상봉을 꼽아왔다. 헌데 이런 목소리는 부쩍 잦아들었다.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평화무드 조성, 남북 경협 이슈에 밀려난듯해서다. 남북이 정치적?외교적?군사적으로 풀어가야 할 난제가 많겠지만 이산가족상봉만은 이와 별개로 진행돼야 한다. 가족을 만나는 일에 정치적 이슈가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 독일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룬 정신의 밑바탕에는 ‘이것도 안 되면 저것도 안 된다’가 아닌 ‘이것도 하면서 저것도 한다.’가 녹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가족끼리 만나고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 일은 가장 원초적인 인도주의다. 시범행사 차원에서 남북 각기 100명으로 시작한 상봉규모를 늘리지 못하는 것도 풀어 가야할 과제다. 찔끔찔끔 상봉하다보니 속이 타들어가는 것은 이산가족들뿐이다. 2008년에 금강산에 세워진 이산가족면회소는 활용되지 못해 전면적인 개보수가 필요하다. 수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사라지면 안 된다. 남북 간에 거부하기 어려운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미 구르기 시작했다. 남북정상의 만남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슴에 품는다.

김훈동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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