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UN 경제사회국(DESA) 2018 세계도시화보고서에 따르면 1950년 도시인구는 7.5억 명이었는데 2018년에는 42억 명이었다. 우리나라만 해도 이미 도시인구가 총 인구의 80%를 넘어섰고 2050년까지 90%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제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도시에서 늙어간다.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도시들 간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공간적 거리는 그대로이지만 이동시간은 훨씬 짧아졌고 물류이동이 기하급수적으로 빈번해지고 규모도 거대해지고 있다. 더 안전하고 더 편안하고 더 많은 기회가 상존하는 지역에 인재와 재화가 단기간 내에 심하게 쏠린다. 이런 흐름 속에서 어떻게든 지역사회를 탈바꿈시키려는 고민과 4차 산업혁명이 결합되어 생겨난 산물이 스마트시티다.

스마트시티의 개념은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다. 공통된 정의를 추려 표현하자면, 다양한 혁신기술을 도시 인프라와 융합시킨 공간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융합플랫폼화 된 도시”이다. 해외 리서치 및 컨설팅 기관들은 2020년 스마트시티 관련 시장이 1.4조 달러, 2025년에는 2.57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세계 221개 도시에서 355개의 스마트시티 프로젝트가 이미 진행 중이며 치열한 경쟁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수준의 ICT 기반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제 대응의 시기를 놓친 느낌이다. 최근에야 정부는 스마트시티를 4차 산업혁명 혁신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고 지원하기 시작했다. 세종과 부산이 시범도시로 선정된 데 이어 대구와 시흥이 후속 지정되었다. 중앙정부와 별개로 서울은 지자체 예산 1.4조 원을 투입하여 행정 및 환경을 플랫폼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생활현장 뿐만 아니라 생산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스마트산단 프로젝트가 시화반월 및 창원에서 첫 삽을 뜬다.

현재 국내 스마트시티 진행 상황을 보노라면 걱정이 적지 않다. 우선 충분한 연구 검토와 치밀한 설계가 선행되었는지 의심스럽다. 뒤늦은 출발로 다급한 심정이야 이해가 되지만, 우리는 과거 조급하게 몰아붙였다가 수년 후 알맹이 없고 논란만 무성했던 국책사업들을 여럿 봐왔다. 작더라도 정교하게 설계하여 적재적소에 최고의 기술을 투입함으로써 내실 있는 솔루션이 나오는 선례를 만들어내야 할 터이다.

솔루션이 구슬이라면 성숙-확산은 보배다. 모멘텀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를 키워나가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새로운 서비스 및 산업이 자생하고 지역사회에 환류되어 선순환 생태계가 작동되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가장 큰 위험요인은 정부의 중장기 정책에 대한 참여자들의 불신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목표는 변질되고 결과적으로 예산 나눠먹기로 귀착되었던 악순환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정치 논리나 행정 편의에 휘둘리는 순간 참여자들은 대의보다는 제 몫 찾기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에 인적, 물적 자원이 집중되어 있다. 수도권의 중심인 서울이 스마트화를 표방한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서울은 대표적인 메가시티로서 제조업과 농업, 항만 등 국가적 핵심의제들의 상당수가 결여되어 있다. 실은 미래 대한민국의 승부처는 경기도다. 승부의 실마리도 이미 존재한다. 판교에서는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 통합 관제하는 자율주행 실증도시가 가동을 앞두고 있고,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시흥이 스마트시티 시범도시로 지정되었다.

특히 시흥을 주목할 만하다. 시민 주도 리빙랩 개념을 도입하고 비즈니스 창출형 스마트시티로 특화하여 설계 중이다. 리빙랩이란 특정 전문가 집단이 특정 공간 내에서 폐쇄적으로 연구개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주민들이 참여하여 진화시켜가는 새로운 방법론이다. 소비와 분배만이 아니라 생산과 성장을 결합시킴으로써 지속가능하고 경쟁력있는 지역사회를 구현할 구체적 방법을 찾아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양한 계층이 공존하는 도시 내부의 디지털 양극화 문제를 완화하고 도농 간 격차를 줄이는 실질적인 모델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된다.

수백 년 전 자녀들은 부모와 판박이 삶을 살았다. 지금은 아니다. 과학기술로 인한 삶의 변화는 오늘도 가속 중이다. 연일 발표되는 암울한 지표들은 우리가 변화의 저변을 통찰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면해오던 것을 지금부터라도 직시해야 한다. 뼈를 때리는 자각 없이는 일자리, 초저출산, 초고령화, 환경오염 문제에 앞으로도 속수무책일 것이다

정택동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