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산에 오르면 하나같이 비슷한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수원시처럼 도시의 북동과 남서를 광교산과 칠보산이 끌어안고 그 안쪽을 고른 간격으로 4대 하천이 흐르고 사이사이 농지가 발달한 전통적인 분지형 도시유형이고, 여기에 겹쳐지는 모습은 인접한 도시경계까지 빽빽하게 채워진 아파트 분지형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이 하나의 중심지였던 수원 도심은 1990년대부터 영통, 정자, 천천, 호매실, 광교지구 등 굵직한 신도시 개발로 크고 빠르게 확대되었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1만5천~2만여 명씩 인구가 꾸준하게 늘었고 앞으로 10년도 비슷한 추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2030 수원도시기본계획’은 밝히고 있다. 당수지구, 대유평지구(KT&G 이전부지), 종전부동산 개발사업(농촌진흥청 기관과 시험장 등) 등 현재 예정되어있는 신규 도시개발 사업에 더해 고등지구 등 철거형 재개발 재건축 사업은 언제나 그랬듯 수원의 도시기본계획 상 인구목표를 초과달성 할 것이라는 예상에 확신을 더한다. 모두 비슷비슷한 공동주택과 상업지구개발 사업으로 재개발 재건축을 제외하면 신규 개발부지 대부분은 생산녹지와 자연녹지 지역이다. 수원은 지금까지 도시개발로도 녹지의 3/4이 사라졌다. 도심에 얼마 남지 않은 자연생태공간인 황구지천 유역의 그린벨트와 우량농지도 마지막 개발압박을 받고 있다.

도시에 사람이 늘고 필요한 시설이 들어서는 일을 누가 나쁘다고만 하겠는가. 문제는 수원시의 지리적 조건이 감당할 만한 개발 규모와 속도이고,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 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받는 사람과 자연환경의 발언권이 얼마나 보장되느냐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인구목표를 과도하게 산정하고 도시계획을 세운다는 것이다. 전국 지자체 2030도시기본계획 인구목표를 합하면 7,0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통계청 인구추계는 2030년 정점을 찍고 이후 계속 감소해서 2060년 4,300만 명이 될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나는 “출산율 저조”, “급속한 고령화”, “경제활동인구 감소”, “인구절벽” 따위의 국가 경쟁력을 걱정하는 화두보다 허구적인 인구목표가 가져올 국토의 재난을 더 걱정한다. 도시는 사람보다는 자동차와 소비의 속도를 기준으로 구획이 나누어지고 길이 뚫리고 건물이 세워지고 있다. 빠르게 외곽으로 성장하면서 도심의 효율성은 약해졌고, 스스로 지리적 공간을 소모하고 있다. 공간을 빠르게 소모하면서 도심은 공동화되고, 그 주요대책인 도시 재생사업은 철거형 도시개발 사업의 또 다른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있다.

도시는, 철강, 자동차, 전자제품, 석유화학 등 국가의 물질적 기반이 되는 산업구조를 지지하는 구조로, 기획된다. 도심과 외곽 할 것 없이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는 집마다 전자제품이 가득하다. 모두 화석연료 기반이고 자동으로 공급되는 전기와 가스, 난방시스템으로 유지된다. 주차장엔 자동차로 가득하고, 도심과 인접한 도시를 향해 뻗은 넓은 도로에는 연료를 가득 채운 자동차들이 끝도 없이 밀려든다. 더 많은 물건을 사서 더 큰 집에 채우기 위해 우리는 더 경쟁적으로 일한다. 눈만 뜨면 접하는 모든 광고와 정보전달 매체는 이런 삶이 좋은 거라고 떠들어대고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매우 익숙한 광경 아닌가. 자연 수탈을 넘어 인간의 삶까지 수탈하는 악순환이다. 이 도시환경에서 우리의 정치와 경제·문화, 생활도 숨을 쉰다. 지속하기 어려운 공생관계다. 가장 큰 의문은, 현재와 미래의 기회인 도시와 자연공간을 소모해서 그곳에 물건이 아닌 어떤 삶의 의미와 사회적 가치를 채울 것인가이다. 만약에 의미와 가치가 필요 없다면 도대체 사회는 왜 필요한가? 인간은 자신과 자연을 수탈해서 얻은 이윤을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

보편적 인권의 주체로서 ‘시민’이 자기 자신을 수탈할 리는 없다. 하지만 현실은 인간의 자기 수탈이 만연하고 있다. 그 이유는 땅과 공간에 대한 시민의 권리와 의무가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국토이용과 도시계획에 관한 권한은 땅을 소유하지 않은 시민에게까지 확대돼야 한다. 그나마 있는 시민참여 제도는 전문 전공자와 강단의 교수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의사결정에서 분야전공 전문가들의 식견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지역에 직접 살거나 일하는 시민들이 더 많은 권한을 갖는 것은 지역공동체 주인으로서 당연한 이치다. 여기서 시민이 갖는 권한에는 권한을 행사할 자기역량을 가질 기회까지를 포함한다. 도시계획제도와 시민참여기구는 오랜 비밀의 영역에서 나와야 한다. 구성을 다양화하고 민주적 의견수렴과 공개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도시가 행정가들과 토지 소유주들만의 공간은 아니다. 시민은 도시의 모든 행위 결과에 영향을 받는다. 시민이 삶의 의미와 이야기를 채워가야 비로소 도시가 완성된다.

윤은상 수원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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